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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0.03 16:24 수정 : 2019.10.04 15:02

고은영
녹색당 미세먼지 기후변화 대책위원장

오랫동안 고양이들과 함께 살았다. 최근 잦은 출장 때문에 고민하다, 고양이들을 당분간 다른 곳에 맡겨두기로 했다. 나는 긴급할 때 반려동물 밥을 부탁할 사람이 있고, 몇달간 부탁할 곳도 있으니 꽤 운이 좋은 편이다. 인간 가족이건 반려동물이건 살아 있는 것을 보살피는 게 부담스러운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반려식물을 키우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통계청의 최근 발표를 보면 2017년 기준 1인가구는 전체의 28.5%인 558만3천가구라고 한다. 2000년에는 15%, 222만가구였는데, 17년 사이 2배 가까이로 증가한 것이다. 그들은 어디에 살까? 1인가구의 주택 형태는 원룸이 33.7%로 가장 많으며, 주거면적은 5~10평 규모가 40.2%를 차지한다고 한다. 살림 옆에서 몸을 누이면 결국 작은 화분을 겨우 들일 수 있는 크기다. 그들은 누구를 돌볼까? 지난해 발표된 한 설문조사에서는 42.1%의 응답자가 ‘반려식물’ 단어 표현에 공감한다고 했고, 69.4%가 반려식물을 키우는 사람들에게 공감한다고 밝혔다. 식물 애호가가 급증하는 이유를 사회는 이미 잘 안다. <2018 대한민국 트렌드>(최민수 외)는 이 현상에 대해 “식물에게나마 마음을 주고 의지할 수밖에 없는 현대인들의 ‘고독’과 ‘외로움’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변화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영화 <레옹>에 등장했던 화분처럼 말이다”라고 꼬집었다.

그 꼬집음에 누군가는 사업을 발견한다. 유통업계에서는 당분간 반려식물 시장의 성장이 이어질 거라며 잘 죽지 않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고 싶은 예쁜 식물들을 중개한다. 선물용 허브 씨앗 패키지도 대세다. 베스트셀러 코너의 한쪽은 이미 수년간 식물 에세이가 차지하고 있고, 가드닝을 선보이는 예능 프로그램이 급증한다. 최근 힙한 카페들은 화분을 잔뜩 들여놓는 플랜테리어를 채택하고 있다.

그 꼬집음에 누군가는 정책을 발견한다. 서울시는 몇년 전 ‘녹색복지’ 정책을 시작했다. ‘생활권 내 도보 10분 이내로 찾아갈 수 있는 녹색 공간이 있다’ ‘녹색공간에서 매일 30분 이상 걷는다’ 등의 20개 녹색복지 지표를 운영하며, 도심 속 숲을 유지하고 추가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그리고 그 도심 숲 옆에 거대한 빌딩이 들어서고, 숲을 사랑하는 예술가들이 모여들며, 공간이 재생되고, 점점 비싸진다. 비싸진 공간에서는 살 수 없는 사람들이 원룸으로 밀려나 몸을 누인다. 불평등한 녹색복지를 의식한 걸까, ‘반려식물 보급’을 검색해보면 이미 전국의 광역, 기초 불문하고 지방정부들이 1인가구들에 반려식물 보급 사업을 펼치는 뉴스가 쏟아진다. 실제 심리적 안정을 찾는 효과가 크단다. 작은 원룸에서 작은 반려식물을 돌보며 작아진 존엄과 욕망을 다스려야 하는 시대가 기어코 우리를 찾아왔다. 원룸시대의 녹색복지라 불려도 손색없다.

사회관계에서 분리돼 반려동물을 맡길 곳, 키울 곳도 없는 사람들에게, 반려식물을 돌보며 스스로를 잘 위로하라고 정책을 펴는 정치를 언제까지 참아야 할까? 며칠 전 가난한 딸들이 한날한시에 몸을 강에 던졌다. 취업에 실패했고 부모와 분리됐으며 원룸 월세가 오래 밀려 있었다. 엊그제는 제주의 아파트에서 일가족 4명이 자살했다. 우편함에 대출 상환 독촉장이 꽂혀 있었다. 가난해서, 기회를 놓쳐서 죽는다는 것은 그 곁에 기댈 사람도, 제도도 없었으며 이미 사회가 붕괴되었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압도적인 한국 사회의 불평등과 붕괴를 정치가 해결하지 않는 사이, 청구서가 자꾸 목숨을 앗아간다. 여기에 저성장과 기후위기가 닥쳤다. 문제 해결 열쇠 중 하나인 정치개혁은 여야의 협잡질에 요원하고, 반려식물 같은 어여쁜 녹색(당)이 부끄러운 세월이 흐른다.

가난해서 죽은 당신들에게 화분이라도 쥐여주며 살라고, 살아남으라고 말해야 했을까?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당신들을 돌보지 못해 미안하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의 마음이 불편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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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고은영, 녹색으로 바위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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