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넘게 전도사와 부목사(부교역자)로 일하면서, 교회 내 ‘열정페이’에 고통받는 입장을 조금 이해하게 됐어요.”
서울 강남동산교회에 14년 전 부임한 고형진 담임목사는 부교역자로 일하며 겪은 고민을 개선하기 위해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업무를 교역자·직원에게 나눠 위임하고, 퇴근을 자율에 맡기기로 했다. 휴무일(월요일) 외에 오전 근무만 하는 날도 정했다. 2016년부터는 부목사·전도사 등과 교회 내 근로계약서 격인 ‘사역 계약서’를 썼다. 시민단체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이 만든 교회 내 사역 계약서 모범안을 적용한 것이다. 이는 기독교계에서는 흔치 않은 사례다. 기윤실이 2015년 부교역자 949명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 사역 관련 계약서를 썼다고 답한 이들이 6%에 불과했다. 고 목사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계약서에 업무 내용과 사례비를 명확하게 규정해 놓으면 ‘열정페이’ 상황이 그나마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헌신페이가 담임목사와 구성원의 ‘주종관계’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했다. 고 목사는 “신학적으로도 담임목사와 부교역자는 역할의 차이지 계급의 차이가 아니”라고 했다. 그는 교회 내 계급 격차를 줄이기 위한 방법으로 교회에 부임한 14년 중 11년 동안 본인 사례비를 동결했고, 직원·부교역자의 임금은 체계를 정해두고 매년 인상했다. 또 전도사·부목사에게 부교역자라는 말 대신, 함께 사역한다는 뜻의 ‘동역자’라는 말을 주로 쓴다.
일부 기독교계가 “교회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헌신하기로 마음먹었기에, 열악한 노동 상황을 참고 견뎌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도 그는 분명한 반대입장을 표했다. “교회가 무작정 헌신을 요구하기보다 부교역자·직원을 인격체로 대하고 그에 걸맞은 사회적·경제적 처우를 보장해주는 게 먼저다. 정해진 일 외에 추가 사역은 개인의 자율에 맡겨야지 의무가 될 순 없다.”
그는 한국 교회가 ‘헌신페이’를 요구하는 모습은 국제 기준에도 맞지 않고 개선해나가야 한다고 했다. 고 목사는 “미국 장로교, 침례교 등 기독교단들도 휴가나 월차, 호봉에 따른 보수 등 기준을 정해 교회 구성원을 대우한다. 이를 공공기관처럼 철저하게 지킨다”고 설명했다.
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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