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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6.10 05:00 수정 : 2019.06.11 16:02

[헌신페이의 민낯]
신학대학원 졸업생 취업률 12.5%
목회활동 경력쌓으려
피해입어도 불만 제기하지 않아
교회 업무는 노동으로 보지 않고
전통적으로 봉사·헌신으로 여겨
거역하면 “신앙심 약하다” 비난

“자네가 일하는 건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잖아. 주말에 헌신하면 좋지.”

한 선교단체 행정팀에 근무하던 김신현(가명·44)씨에게 목회자인 대표가 주말 출근을 지시하며 말했다. 김씨를 비롯한 직원과 전도사들은 대표의 지시를 따라야 했다. 이들 모두는 이미 안다. 휴일수당이나 대체휴무는 ‘당연히’ 있을 리 없다는 걸.

김씨처럼 개신교계 내 ‘열정페이’를 경험한 이들은 ‘헌신’을 부당 노동의 다른 말로 기억했다. 헌신은 언제부터 ‘열정페이’의 언어가 된 걸까.

■ 극심한 취업난에 예비 목회자는 ‘을’

‘헌신페이’(교회 내 노동착취) 구조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청년 전도사들이 마주한 씁쓸한 현실을 들여다봐야 한다. 신학대학원을 마친 졸업생 대다수는 교계에서 목회활동을 위한 경력을 쌓고 싶어한다. 하지만 개신교계에서도 청년 취업난은 다르지 않다. 신학대학원 졸업생은 해마다 수천명씩 쏟아져 나온다. 9일 <한겨레>가 대학 알리미 통계를 통해 집계한 결과, 최근 3년간(2016~2018년) 전국 31개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이들은 7485명이었다. 비인가 신학교를 포함하면 1만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이들이 안정적으로 사역할 만한 곳은 매우 제한적이다. 교회·선교 단체 등 국내 개신교 단체는 5만5000여개 수준으로 적지 않은 편이지만, 이 중 94%가량은 전담자를 1∼4인만 두는 곳(2017년 통계청 조사 기준)이다. <한겨레>가 집계한 신학대학원 졸업생 취업률도 이런 상황을 반영한다. 31개 신학대학원 졸업생의 최근 3년 평균 취업률은 12.5%에 그친다. 특수목적 대학원임을 고려해도 취업률 70%가 넘는 일반 대학원과 비교해 차이가 명백하다. 이런 엄혹한 현실이 신학대학원 졸업생을 ‘을’로, 교회를 ‘갑’으로 만든 배경이다. “신학교들이 등록금 수익을 위해 졸업생을 무분별하게 배출하고 있어요. 교계에 졸업생을 수용할 사역지가 불충분한데도 전혀 고려하지 않고요. 전도사들이 일할 수 있는 터전은 교회 테두리로 한정됩니다. 다른 일터를 상상할 수 없는 상황을, 일부 교회는 ‘헌신페이’로 악용하는 거죠.”(이헌주 교회개혁실천연대 사무국장, 목사)

어렵사리 임지를 구하더라도 전도사의 입지는 불안정하다. 교회 대다수가 전도사와 정식으로 근로계약을 하지 않는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이 2015년 부교역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949명 참여)를 했는데, “사역 관련 계약서를 쓰지 않았다”는 답변이 93.7%에 이르렀다. 전도사는 교회 권력자로부터 ‘갑질’ 피해를 봐도 불만을 제기하거나 그만두기 쉽지 않다. 청년 전도사가 장차 목회활동을 이어갈 수 있을지를 결정하는 이들이 교회 담임목사를 비롯한 교단 권력자기 때문이다. “부교역자에게 현재 일하고 있는 교회의 내부 평가는 상당히 중요합니다. 부교역자가 이직한다고 했을 때, 이전에 근무하던 교회에 평판 조회를 해볼 것이기 때문이죠. 청년 전도사가 담임목사의 지시를 거부하기 힘든 원인 중 하나죠.”(양희송 청어람ARMC 대표)

■ ‘헌신페이’ 거부 땐 “신앙심 약하다”

그럼 교회나 개신교 단체에서 일하는 일반 노동자는 목회자의 길을 가려는 것도 아닌데, 왜 ‘헌신페이’ 요구에 맞서지 못할까. 이는 교계의 오랜 관행과 맞닿아 있다. 교회 내 업무를 ‘노동’으로 보지 않는 관습 때문이다. 박종현 <전도사닷컴> 편집장(목사)은 “교회는 전통적으로 일을 봉사와 헌신으로 생각해왔다. 목회를 포함한 교회 안에서 필요한 일을 노동으로 보지 않았다”며 “사회법으로는 노동의 요건이 분명하게 갖춰진 업무도 노동으로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강하다”고 짚었다. “교회의 관습이 사회법을 이기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관리집사 등 ‘교회 내 노동자’는 목사·전도사보다 더 열악한 현실에 부닥치기도 한다. 박제민 기윤실 팀장은 “교회 내 노동자는 종교인과 헌신은 똑같이 하면서, 대부분 부교역자 수준의 처우조차 받지 못한다”며 “종교기관 노동자들은 지위에 대한 보장도 없고, 동료도 많지 않은 편이라 부당함을 토로할 곳도 거의 없다”고 말했다.

담임 목회자 등 소수 중직자가 교회 안에서 의사결정권을 독점하고, 구성원들은 이들의 지시를 일방적으로 따라야 하는 상황도 ‘헌신페이’를 만연하게 한다. “교회에서 담임목사는 하나님의 대리인입니다. 교인들은 목사에 순종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습니다. 교회 노동자가 쥐꼬리만한 임금을 받으면서도 각종 종교행사에 동원되는 걸 거부하지 못하는 이유죠. 만약 이런 요청에 응하지 않으면 곧바로 ‘신앙심이 약하다’는 비난이 돌아옵니다. 이것이 종교계 노동자가 겪는 ‘헌신페이’의 기본 구조입니다.”(김형남 종교투명성센터 공동대표)

박준용 배지현 기자 juney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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