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뉴스팀장 몇년 전 터키 이스탄불 공항에서 비행기를 갈아타려는 중이었다. 내가 타려는 비행기 탑승구 쪽으로 뭔가 이질적인 이미지가 움직였다. 센 바람에 휙 하고 코끝에 닿는 냄새처럼 일말의 불안감이 스쳤다. 0.1초나 걸렸을까 말까였다. 곧장 단어와 문장으로 구성되는 생각도 아니었다. 쏜살처럼 지나가는 자동차 전조등에 반사적으로 눈이 찡그려지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들은 위아래로 흰색 전통 복장을 한 무슬림 남자 서넛이었다. 모두 건장했는데 표정은 밝지 않았다. 그리고 당혹스러워졌다. 곧 이성이 작동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 경계심은 어디에서 왔을까? 9·11 사건이라도 떠올랐나? 저렇게 입은 사람이 수천만은 될 텐데, 음모를 꾸미는 자들이라면 도리어 서구풍 행색을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어 잘못 없는 사람들에게 찰나나마 거부감을 느낀 게 괜히 미안해졌다. 역시 이성과 감성은 따로 간다고도 생각했다. 인종·국적·종교를 이유로 사람을 달리 취급하면 안 된다는 신념은 게으른 발걸음으로 뒤늦게야 도착했다. 위선자 같으니라고. 사람에게는 생존과 안전이 큰 문제다. 세계 곳곳에는 분쟁과 갈등이 존재하지만, 전체로 보면 지금처럼 평화로운 시기는 별로 없었다. 최후의 이슬람국가(IS) 소탕전이나 아프가니스탄 내전의 간헐적 총성 정도가 들려온다. 역설적인 것은 서구 정치인들과 지식인들은 어느 때보다 걱정이 크다는 점이다. 1차대전을 완전히 종결한 베르사유조약 100돌에 민족주의의 망령이 되살아난다고 말한다. 지난 70여년간 인류가 누린 평화가 위협받을 수 있다고도 한다. 자신들의 경험과 현재를 바탕에 둔 시각이므로 다분히 서구 중심적이기는 하다. 지난 20~30년 동안에도 아프리카, 중동, 발칸반도는 전혀 안녕하지 못했다. 어쨌든 인류를 한 식구라고 치면 지금 우리는 평화기를 구가한다. 그러나 화산 폭발을 앞두고 땅이 슬슬 흔들리는 것처럼 불길한 전조가 늘고 있다. 유럽·미국의 반이민 바람과 극우의 성장, 미얀마 로힝야족 학살, 인도-파키스탄의 카슈미르 위기 등이 잇따랐다. 북-미나 미-중 갈등도 진행중이다. 장기 평화가 깨질까 걱정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배타적·호전적 민족주의가 어느덧 주류의 자리를 넘보는 것에 신경이 곤두서고 있다. <가디언>이 전문가들에게 의뢰해 지난 20년간 40개국 정상 170명을 분석해보니 포퓰리스트 지도자가 두배로 늘었다는 결과가 나왔다. 더 심각한 것은 미국·러시아·인도·브라질 등 대국들이 포퓰리스트에게 넘어간 것이다. 이스탄불 공항에서의 당혹스러운 경험과 세계 정치의 변화에는 뇌 호르몬 옥시토신의 작용이라는 희미한 공통점이 있다. 갓난아이와 엄마가 강렬한 유대감을 느끼게 하고, 남녀의 사랑에 개입하고, 동료 집단에 애착을 갖게 만드는 이 호르몬은 ‘사랑의 묘약’으로 불린다. 그런데 신경과학자들은 같은 호르몬이 다른 집단에 대한 질투·편견·혐오도 만들어낸다는 기묘한 사실을 밝혀냈다. ‘사랑의 묘약’과 ‘증오의 독약’이 같은 병에 든 것이다. 그렇다고 이 호르몬이 배타적 민족주의의 직접적 창조주는 아니다. ‘우리’와 ‘너희’의 구분은 바뀌고, 강요되고, 교육되고, 때로는 선택하는 것이다. 무슬림과 멕시칸들이 쳐들어온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식의 선동이 먹히면 인종주의의 날개가 커진다. 포퓰리즘이나 인종주의와 싸우려면 그것들이 단 0.1초 만에 사람을 사로잡는 호르몬의 지원을 받는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이성이 어떻게 본능에 스민 독성을 억누를지에 관해 정교하게 접근해야 한다. ‘인간의 길’은 늘 그런 싸움을 해왔다. ebon@hani.co.kr
칼럼 |
[코즈모폴리턴] 이스탄불 공항에서 스스로 한심해졌다 / 이본영 |
국제뉴스팀장 몇년 전 터키 이스탄불 공항에서 비행기를 갈아타려는 중이었다. 내가 타려는 비행기 탑승구 쪽으로 뭔가 이질적인 이미지가 움직였다. 센 바람에 휙 하고 코끝에 닿는 냄새처럼 일말의 불안감이 스쳤다. 0.1초나 걸렸을까 말까였다. 곧장 단어와 문장으로 구성되는 생각도 아니었다. 쏜살처럼 지나가는 자동차 전조등에 반사적으로 눈이 찡그려지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들은 위아래로 흰색 전통 복장을 한 무슬림 남자 서넛이었다. 모두 건장했는데 표정은 밝지 않았다. 그리고 당혹스러워졌다. 곧 이성이 작동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 경계심은 어디에서 왔을까? 9·11 사건이라도 떠올랐나? 저렇게 입은 사람이 수천만은 될 텐데, 음모를 꾸미는 자들이라면 도리어 서구풍 행색을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어 잘못 없는 사람들에게 찰나나마 거부감을 느낀 게 괜히 미안해졌다. 역시 이성과 감성은 따로 간다고도 생각했다. 인종·국적·종교를 이유로 사람을 달리 취급하면 안 된다는 신념은 게으른 발걸음으로 뒤늦게야 도착했다. 위선자 같으니라고. 사람에게는 생존과 안전이 큰 문제다. 세계 곳곳에는 분쟁과 갈등이 존재하지만, 전체로 보면 지금처럼 평화로운 시기는 별로 없었다. 최후의 이슬람국가(IS) 소탕전이나 아프가니스탄 내전의 간헐적 총성 정도가 들려온다. 역설적인 것은 서구 정치인들과 지식인들은 어느 때보다 걱정이 크다는 점이다. 1차대전을 완전히 종결한 베르사유조약 100돌에 민족주의의 망령이 되살아난다고 말한다. 지난 70여년간 인류가 누린 평화가 위협받을 수 있다고도 한다. 자신들의 경험과 현재를 바탕에 둔 시각이므로 다분히 서구 중심적이기는 하다. 지난 20~30년 동안에도 아프리카, 중동, 발칸반도는 전혀 안녕하지 못했다. 어쨌든 인류를 한 식구라고 치면 지금 우리는 평화기를 구가한다. 그러나 화산 폭발을 앞두고 땅이 슬슬 흔들리는 것처럼 불길한 전조가 늘고 있다. 유럽·미국의 반이민 바람과 극우의 성장, 미얀마 로힝야족 학살, 인도-파키스탄의 카슈미르 위기 등이 잇따랐다. 북-미나 미-중 갈등도 진행중이다. 장기 평화가 깨질까 걱정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배타적·호전적 민족주의가 어느덧 주류의 자리를 넘보는 것에 신경이 곤두서고 있다. <가디언>이 전문가들에게 의뢰해 지난 20년간 40개국 정상 170명을 분석해보니 포퓰리스트 지도자가 두배로 늘었다는 결과가 나왔다. 더 심각한 것은 미국·러시아·인도·브라질 등 대국들이 포퓰리스트에게 넘어간 것이다. 이스탄불 공항에서의 당혹스러운 경험과 세계 정치의 변화에는 뇌 호르몬 옥시토신의 작용이라는 희미한 공통점이 있다. 갓난아이와 엄마가 강렬한 유대감을 느끼게 하고, 남녀의 사랑에 개입하고, 동료 집단에 애착을 갖게 만드는 이 호르몬은 ‘사랑의 묘약’으로 불린다. 그런데 신경과학자들은 같은 호르몬이 다른 집단에 대한 질투·편견·혐오도 만들어낸다는 기묘한 사실을 밝혀냈다. ‘사랑의 묘약’과 ‘증오의 독약’이 같은 병에 든 것이다. 그렇다고 이 호르몬이 배타적 민족주의의 직접적 창조주는 아니다. ‘우리’와 ‘너희’의 구분은 바뀌고, 강요되고, 교육되고, 때로는 선택하는 것이다. 무슬림과 멕시칸들이 쳐들어온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식의 선동이 먹히면 인종주의의 날개가 커진다. 포퓰리즘이나 인종주의와 싸우려면 그것들이 단 0.1초 만에 사람을 사로잡는 호르몬의 지원을 받는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이성이 어떻게 본능에 스민 독성을 억누를지에 관해 정교하게 접근해야 한다. ‘인간의 길’은 늘 그런 싸움을 해왔다.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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