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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0.17 10:09 수정 : 2019.10.17 20:41

새로운 레저스포츠로 뜨고 있는 드론 축구. 사진 송호균 객원기자

커버스토리┃드론

최근 국제대회도 열린 드론 레이싱
순간 최대 속도는 시속 160~180㎞
박진감 넘치는 스포츠로 자리 잡아
축구와 비슷한 드론 축구·드론 볼은 이색 경기
취미로 시작했다가 항공 촬영 전문가 된 이도 있어

새로운 레저스포츠로 뜨고 있는 드론 축구. 사진 송호균 객원기자

머신들이 일제히 시동을 건다. 모터에서 흘러나오는 날카로운 기계음과 함께 장내에는 긴장감이 흐른다. 관중들은 일제히 숨을 죽였다. 운전자의 뺨에는 차가운 땀 한 방울이 흘러내린다. 4명의 선수는 심판의 신호에 따라 일제히 출발한다. 머신들은 찢어질 듯한 굉음을 내며 첫 번째 코너를 향해 질주한다. 마치 에프원(F1) 그랑프리 경기를 보는 듯한 짜릿함과 속도감을 자랑하는 신개념 레저 스포츠가 뜨고 있다. 바로 ‘드론 레이싱’이다.

부품들을 조합해 최상의 성능을 끌어올린 머신을 구축하고, 서로의 기량을 겨룬다. 이건 우리 모두가 한때 품었던 유년기의 로망이 아니었던가. 일본의 유명한 만화 시리즈인 <아머드 코어>나 국내에서도 어린이들 사이에 선풍적인 바람을 일으킨 ‘터닝메카드’ 관통하는 정서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은가. 만화적 상상은, `드론 레이싱’에서 현실이 되고 있다.

레이싱 드론의 순간 최대 속도는 무려 시속 160~180㎞에 이른다. 0.1초의 차이에도 승부가 갈리기 때문에 직관적으로 드론의 시점에서 비행하는 에프피브이(FPV·First Person View) 장비가 필수다. 선수들은 경기를 위해 고안된 고글을 착용한 채 서로 속도를 겨루는데, 일반적인 드론과 달리 지피에스(GPS) 등 편의기능을 과감히 없애고 속도와 조작 성능을 극한까지 끌어올린 자작 기체를 사용한다. 한국드론레이싱협회(KDRA)는 2016년부터 국내 최초로 ‘한국드론 레이싱리그’(KDL)를 운영하고 있다. 중고등학생으로 이뤄진 130여명의 선수가 리그에서 뛰고 있다고 한다.

드론 레이싱. 질주하는 속도가 쾌감을 선사한다. 사진 한국드론레이싱협회 제공
지난 12~13일에는 강원도 영월 스포츠파크에서 국제드론스포츠연합(DSI)이 개최한 레이싱 대회가 열렸는데, 총상금이 5만달러에 달하며 16개국 80여명의 선수가 참가했다. 특히 스피드 레이싱 분야에서는 한국팀인 애스트로-X팀(김재종·이상훈·최준원)이 러시아 선수들을 꺾고 우승해 2만달러의 상금을 챙겼다. 오는 11월1일부터 3일까지는 전북 전주 월드컵경기장에서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산하 국제항공연맹(FAI)이 개최하는 ‘월드 드론 마스터즈’ 대회가 열릴 예정이다.

하늘에서 축구처럼 양편으로 나눠 경기를 펼치는 ‘드론 축구’와 ‘드론 볼’도 있다. 전용 드론을 구체 모양의 프레임으로 감싸 드론 자체가 공이 된 형태다. 공격 쪽은 드론을 골대 안에 넣어야 하고, 수비 쪽은 그걸 막아야 한다. 이건 마치 <해리 포터> 시리즈에 나오는 ‘퀴디치 경기’의 아이티(IT) 버전이라 할 만하다. 드론 축구는 일반 축구경기처럼 양쪽의 골대에 드론을 집어넣는 형식이고, 드론 볼은 골대가 하나만 있다는 차이가 있다. 대신 드론 볼은 공격팀과 수비팀이 일정 시간마다 진영을 바꿔 공수 교대를 하는 식이다. 레이싱이나 축구 등 보다 전문적인 영역에 도전해보고 싶다면 한국드론레이싱협회’(KDRA)나 대한드론축구협회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축구공처럼 만든 드론. 사진 송호균 객원기자
레이싱이나 축구 등 ‘드론 스포츠’에 투신한다고 해서 모두가 ‘국제대회 1등’을 향해 달려갈 필요는 없다. 드론을 활용한 스포츠 경기 자체가 이미 ‘엔지니어 감수성’을 체험할 수 있는 하나의 교육장이기 때문이다. 10대 때부터 무선조종(RC) 항공기 조종 등을 거치며 대학 전공도 전자공학 쪽으로 정했다는 한국드론레이싱협회 박진일(38) 이사는 “조종을 잘하는 데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로봇을 만드는 것과 비슷한 과정이라고 보면 된다. 드론 레이싱에는 전자공학, 물리, 공기역학, 항공 관련 기술 등 다양한 분야의 기술이 녹아있다. 어린 학생들이 이러한 과정을 직접 체험하고 수행하는 것만으로도 교육적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다른 분야와의 융합을 통한 발전 가능성도 주목할 만하다. 국내 최초로 에프피브이 레이싱 드론을 상업 촬영에 접목해 활동하고 있는 전배원(42)씨는 ‘취미로’ 드론 레이싱을 즐기다가 전문 영상인의 길로 뛰었다. 국내에서 에프피브이 촬영을 전문으로 하는 건 현재까지 전씨가 유일하다고 한다. 다소 정적인 항공 촬영에서 한발 더 나아가 빠르게 움직이는 피사체에 드론을 바짝 붙여 숨 막힐 정도로 역동적인 결과물을 얻어낼 수 있다.

전씨는 “기존의 드론이 원거리에서 전경을 담는 데 그쳤다면, 에프피브이 드론을 활용하면 최대 시속 100㎞ 정도로 움직이는 피사체까지 근접 촬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움직이는 물체를 30㎝ 거리에서 잡아낼 수도 있다. 이건 항공 촬영의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이라고 설명했다. 전씨가 상업 촬영에 뛰어든 건 채 1년이 안 되었지만, 이미 폭스바겐의 자동차 아테온이나 게임 리니지 등의 광고 촬영에 참여했다. 웹 드라마 <로봇이 아닙니다> 촬영도 작업했다. 전씨의 영상 작업은 그의 유튜브 채널(Won’s FPV)에서 확인할 수 있다.

송호균 객원기자 gothrough@naver.com

여러 드론 레이싱 대회를 석권하고 있는 박성주 선수. 사진 한국드론레이싱협회제공
[ESC] 드론 스포츠계 ‘손흥민’ 박성주!

10대가 주축인 현재의 드론 레이싱 선수 중에서도 ‘톱클래스’로 통하는 박성주(16) 선수는 평소 무선조종(RC) 자동차를 즐기던 아버지 박양호(46)씨의 손에 이끌려 자연스레 드론의 세계에 입문했다.

원래 부자는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사업하던 아버지는 바빴고, 사춘기 아들은 수줍었다. 박양호씨는 “아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잘 몰랐다”고 고백했다. 아내의 제안에 따라 ‘부자가 함께 놀 수 있는 일’을 찾기 시작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무선조종 자동차를 갖고 ‘함께 놀던’ 부자는 아들이 본격적으로 프로 드론 레이싱 파일럿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2년 전부터 함께 훈련하고, 함께 대회에 참가하고, 기록을 관리하고, 보완점을 함께 찾아가는 든든한 파트너가 됐다. 박 선수가 중학교 3학년이 되던 해부터다. 말하자면 아버지 박씨는 아들의 감독이자 엔지니어이고, 매니저인 동시에 담당 수리공인 셈이다. 아버지 박씨는 “이제는 아들과 매일 붙어있는 입장”이라며 웃었다.

일반인은 눈으로 쫓아가기도 힘든 무지막지한 속도전을 벌이는 드론 레이싱의 세계에 입문하자마자 두각을 나타낸 박 선수는 2017년 영월에서 열린 국제대회의 단체전 1위를 시작으로, 같은 해 리그에서 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통했다. 2018년에는 춘천컵과 네델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국제대회에서 우승했고, 올해도 독일과 과천에서 각각 열린 대회에서 1위를 차지했다.

10일 전화 인터뷰에서 박 선수는 “드론 레이싱은 동체 시력 같은 신체적 조건보다는 자신의 노력이 훨씬 더 중요한 분야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학교를 마친 뒤 매일 1~2시간씩 아버지와 함께 훈련한다는 박 선수는 매년 10~15차례 정도 대회에 출전한다. 한 대회가 끝나면 곧바로 기기를 보완하고, 다음 대회를 준비해야 하는 셈이다.

어려운 점은 없을까? 박 선수는 “아직은 열악한 인식과 훈련 조건”을 들었다. “야구나 축구처럼 잘 알려진 스포츠가 아니어서 그런지 제대로 된 훈련장이 없어요. 매일 집 근처 공터에서 비행 허가를 받고 훈련하고, 장애물 등 훈련 코스도 직접 만들어야 하는 게 가장 힘들죠.”

박 선수는 프로 선수로서 대회 상금으로만 ‘중소기업 직장인 연봉’ 이상을 벌고 있고, 각 부품업체로부터 지원도 받는다. 하지만 새로 드론 레이싱에 뛰어드는 선수들은 아직도 열악한 조건에서 허덕여야 한다. 기체 유지에만도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드론 레이싱 꿈나무들은 모두에게 슈퍼스타 대접을 받는 프로 운동선수나 최근 각광을 받는 프로 게이머들이, 그래서 부럽다.

미국이나 유럽 등지의 ‘빅 리그’에서 뛰는 게 꿈이라는 박 선수는 드론 레이싱에 관심이 있거나 선수로 뛰고자 하는 ‘더 어린’ 친구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여러 가지로 힘들긴 하겠지만, 포기하지 마세요. 미래의 꿈을 위해 노력한다면 꼭 성공할 수 있을 거예요. 저도 그런 친구들을 열심히 응원할게요.”

송호균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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