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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0.24 17:46 수정 : 2019.10.28 10:30

매자식당의 쌀국수. 박미향 기자

최근 몇 년 서울에서 고향 속초로 간 이 늘어
그들 중 동명동에 자리 잡은 20~30대
재미난 식당·카페·서점 등 열어 여행객 맞이해
대부분 밀레니얼 세대 “하고 싶은 것 하려고 속초 선택”

매자식당의 쌀국수. 박미향 기자

그가 울컥했다. 36살 강형은씨는 고등학교 2학년 때 고향 속초에서 서울로 전학 갔다. 복잡한 서울과 먼 나라 미국에서 그림 공부를 했다. 도시 서울 한 모퉁이에서 미술학원도 운영했다. 지난 11일 오후 ‘매자식당’에서 만난 강씨는 말했다. “서울생활에 지쳤죠. 그저 어머니와 같이 있고 싶어서 왔어요.” 그의 말엔 눈물이 배여 있었다. 2년 전 돌아온 고향 강원도 속초시 동명동은 낮은 지붕들이 서로를 의지하며 버티는 ‘잊힌 거리’였다. 관광도시 속초답게 사람 왕래가 잦을 법도 한데, 그곳은 속초 속에 외지였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게 민망했다”는 그는 결국 일을 벌였다. 어머니와 할머니를 설득해서 ‘매자식당’을 연 것이다.

어머니 조복흥(63)씨는 고기 전문가다. 정육점만 27년 운영했다. 할머니 최매자(83)씨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면 요리 ‘선수’다. 40년간 속초중앙시장(지금 속초관광수산시장)에서 칼국수를 팔았다. 식당 이름은 ‘눅거리’(북한말로 ‘싸다’란 뜻). 7년 전 작고한 남편의 고향이 북쪽이었다. 암소갈비를 푹 끓여 낸 어머니의 육수에 할머니가 직접 뽑은 면이 합쳐져 우아한 풍미의 베트남 쌀국수가 탄생했다. 강씨는 식당을 설치미술 전시장처럼 만들었다. 콘셉트는 ‘레드’. “야하게 만들고 싶었어요.” 농도가 다른 붉은색이 식탁과 벽, 천장을 휘감았다. 호젓했던 동네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식당 앞에 긴 줄이 생겼다. ‘속초 리턴족’인 강씨가 골목 풍경을 바꾼 것이다.

최근 몇 년 사이 동명동엔 ‘속초 리턴족’이 늘고 있다. 실속 없는 허세가 넘치는 서울을 떠나 다른 곳에서 자신의 가능성을 실험해보려는 젊은이들이 느는 추세가 이곳 동명동에서도 일고 있다.

카페 옥남. 박미향 기자

동명동 ‘카페 옥남’도 ‘속초 리턴족’이 만든 공간이다. 올해 4월 결혼한 탁도형(36)·최미선(32) 부부는 지난해 5월께 탁씨의 할머니 김옥남(76)씨의 이름을 딴 ‘카페 옥남’을 열었다. 이들은 서울에서 요리사로, 병원 직원으로 일했다. 탁씨는 “캠핑을 좋아하는 우리에게 서울은 지루한 동네인 데다가 남들에게 잘 보여야 하는 스트레스도 많은 곳”이라고 말했다. “출퇴근 시간엔 숨이 막혔다. 속초는 다르다.” 최씨의 말엔 자부심이 깃들여 있었다. 누구나 조금만 생각의 방향타를 수정하면 다른 삶을 만날 수 있다고 이들이 증명하고 있다.

‘카페 옥남’에서 2~3분 거리엔 ‘띠앗’이 있다. 문앞에 서면 꽃 향이 여행자를 휘감는다. “우린 남매입니다. 닮았죠.” 누나 이미지(32)씨의 맑은 미소가 가을 국화처럼 싱그럽다. 그는 올해 5월께 서울생활을 청산하고, 동생 한울(27)씨와 고향에 왔다. 미지씨는 서울에서 8년간 영양사 겸 푸드스타일리스트로 활동했다. ‘도미노피자’, ‘네네치킨’ 등의 광고 속 음식이 그의 손에서 태어났다. 한울씨는 ‘반야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 ‘웨스틴 조선호텔 서울’ 등에서 플로리스트로 일했다. “우리는 직장의 이름이 중요하지 않아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가장 중요하고, 이왕이면 고향에서 하자 결심했죠.” 미지씨의 눈에 자신감이 넘쳤다. 가게엔 꽃이 흐드러지고 올곧게 쭉 뻗은 나무가 가득하다. 이들 남매가 만든 분홍색 ‘앙버터모나카’는 우리 인생처럼 달곰하다. 특급호텔 5년 경력이 아깝지 않았냐는 질문에 한울씨는 “결혼식 장식 꽃을 주로 만들었는데, 한 가지만 반복해 만드는 게 아쉬웠다. 더 다양한, 나만의 디자인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한다. 게스트하우스 겸 독립서점인 ‘완벽한 날들’도 5년 전 고향으로 ‘리턴’ 한 최윤복(36)씨가 연 곳이다.

이들 ‘속초 리턴족’의 특징 중 하나는 모두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2000년 초반 출생한 세대)라는 점이다. 밀레니얼 세대는 떠밀려 고향행 열차를 타지 않는다. 고향을 ‘선택’한다. 조직에서 소비되기보다는 자신의 주관을 표출하고 완성하는 데 열정을 바친다. 남들의 평에 자신의 소중한 삶을 맡기지 않는다. 그래서 망설임 없는 선택은 필수다. 이들의 선택이 지금 거리를 바꾸고 있다.

속초시 동명동 일대는 이들 ‘리턴족’과 본래 이곳에서 살던 이들, 여행 왔다가 동네에 반한 도시인들이 한데 어우러져 관광도시의 상투적인 표정과는 다른 얼굴을 여행객들에게 내민다.

① 동명항 생선숯불구이

40여년 된 노포(오래된 가게) 식당이다. 본래 동명항 인근에 있었으나 6년 전 지금의 장소로 이사했다. 사장 오종석(42)씨는 “어머니(이후분·70) 때부터 생선구이를 했었다”고 말한다. 숯불에 구운 제철 생선 5가지가 한 접시에 나온다. 지역 대표 맛집으로 유명하다.

동명항 생선숯불구이의 음식. 박미향 기자

② 감나무맨션

맨션이 아니다. 감나무가 주렁주렁 달린 마당이 아름다운 카페다. 전업주부였던 이경숙(49)씨가 올해 3월에 문 연 ‘뉴트로’(새로움+복고)풍의 공간이자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able·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좋은 시각적인 것) 카페다.

감나무펜션 실내. 박미향 기자

③ 벨라 쿠치나(Bella Cucina)

수준 높은 파스타 등 이탈리아 음식을 파는 레스토랑이다. 요리사 김지환(38)씨가 솜씨를 발휘하고, 김혜진(32)씨가 홀을 책임지는 곳이다. 이들은 부부로 특급호텔 제주신라호텔 등에서 일한 재원들이다. 지난해 9월께 문 열었다. 생면파스타 전문점이다.

벨라 쿠치나 파스타. 박미향 기자

④ 매자식당

강형은(36)씨가 어머니 조복흥(63)·할머니 최매자(83)씨와 연 베트남 쌀국수 전문점. 전시 공간 같은 외관과 실내가 눈길을 사로잡는 식당이다. 암소갈비로 우린 진한 육수가 맛의 비결이다.

메자식당 실내. 박미향 기자

⑤ 카페 옥남

올해 4월 결혼한 탁도형(36)·최미선(32) 부부가 운영하는 세련된 카페. 한쪽 벽이 창문이다. 활짝 열면 색다른 풍경을 선물한다. ’옥남라떼’ 등 맛깔스러운 커피 등을 판다. 이들은 곧 레스토랑도 열 계획이다.

카페 옥남의 실내. 박미향 기자

⑥ 감자옹심이

25년 된 식당. 주인 최정숙(60)씨는 강릉이 고향이다. 어머니 김순자(84)씨가 강릉에서 감자옹심이 파는 식당을 운영한다. “속초에는 본래 옹심이집이 없었다”는 그는 어머니의 손맛을 속초에서 펼치고 있다. “감자 전분을 잘 쓰는 게 중요”하다는 그는 “우리 것은 너무 쫄깃하지도 너무 무르지도 않다”고 말한다. 속초의 대표적인 감자옹심이 전문점이다.

감자옹심이 음식. 박미향 기자

⑦ 정든식당

전국적으로 유명한 속초 대표 맛집이다. 얇은 감자가 들어간 장칼국수는 그리 짜지도 맵지도 않아 매력적이다. 1994년 문 연 이 집은 3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 엄정녀(74)·추교만(73)씨 부부가 창업한 이 집을 딸 추복순(52)·주원희(52)씨 부부가 이어서 하고, 그들의 아들 주영재(25)씨가 돕고 있다. 가게에 들어서면 직접 면을 뽑고 있는 추복순씨를 발견한다. 3500원이었던 장칼국수는 세월 따라 이제 7000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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⑧ 띠앗

서울에서 푸드스타일리스트와 플로리스트로 활동한 이미지(32)·한울(27) 남매가 운영하는 꽃 카페. 꽃향기 속에서 따끈한 차와 디저트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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⑨ 속초백수씨 심야식당·백수씨 분식당

지난 10일 밤 9시. ‘백수씨 심야식당’에 들어서자 왁자지껄한 소리부터 들린다. 20대 초반 청년 정윤정·배중성·오상민·김지안 등이 흥겹게 술을 마시고 있다. 이들은 “단골인데, 여기는 감성술집”이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문 연 지 1년 정도 되는 이 술집은 이른바 속초 20대들에게 ‘힙한 곳’으로 자리 잡았다. 사장 사태열(41)씨는 본래 서울 경희대 인근에 있는 술집 ‘백수씨 심야식당’에서 일했던 요리사다. 서울 ‘백수씨 심야식당’의 총괄사장 김백수(49)씨가 경영을 맡겼다. 김씨는 “속초시외버스터미널 뒷골목은 재밌는 동네인데, 콘텐츠가 부족해 보였다”고 말한다. 바로 옆에 있는 ‘백수씨 분식당’을 연 사연이기도 하다. 김씨가 창업 자금 일부를 투자한 ‘백수씨 분식당’은 윤여감(30)씨가 사장이다. 주방장은 고경일(28)씨다. 모두 서울 ‘백수씨 심야식당’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이들이다.

서울이 고향인 김씨가 속초에 식당 창업을 추진한 이유는 식재료 경매 때문이다. 식재료 공급을 위해 속초 새벽 경매시장을 다니다 보니 이 지역이 좋아졌다고 한다. “속초는 제2의 고향입니다.” 허름하고 복고풍이면서도 세련된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이 식당들엔 육전 등 각종 안주와 튀김, 색다른 맛의 유부초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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⑩ 지느러미

속초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하면 “이런 곳에 왜 이런 게 있지”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지느러미’ 때문이다. 터미널 바로 옆에 있는 지느러미에 들어서면 천장엔 오징어를 형상화한 장식물이 걸려있다. 산악인 차철호(42)씨가 주인이다. 산악구조대 경력만도 18년이다. “어제도 출동해서 15시간 만에 산에서 내려왔어요.” 동명동 터줏대감인 그는 설악산산악구조대 대원이다. “동명동은 ‘동쪽에서 뜨는 해’란 뜻입니다. 어찌 보면 속초의 출발지인 거죠.” 몇 달 전 여행 잡지 <론리 플래닛>에도 소개된 지느러미는 3년 전 차씨의 어머니가 운영하던 정육식당을 개조해 만든 카페 겸 문화공간이다. 가수 엄인호씨 등을 초대해 콘서트도 열었고, 앞으로 공연 계획이 줄줄이 잡혀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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⑪ 소호259

2015년 문 연 한옥 게스트하우스 ‘소호259’가 출발이었다. 이 공간의 주인인 이상혁(33)·이승아(31) 남매는 취업해 2년간 번 돈으로 고향 서울이 아닌 속초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열었다고 한다. 이승아씨는 “호수, 바다, 산이 다 있는 속초와 한옥에 반했다”고 말한다. “유럽 배낭여행에서 한 경험을 잊을 수 없어서 시작한 일이죠.” 남매가 기획한 ‘물놀이 프로젝트’, ‘등대해변에서 게임을 하기’ 등이 에스엔에스를 타고 20~30대들에게 입소문 나기도 했다. 2018년엔 게스트하우스를 늘리고, 카페, 전시공간도 열었다. 올해는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 지원금을 받아 운영 예정인 ‘고구마쌀롱’에 집중할 생각이라고 한다. 고구마쌀롱은 일종의 여행자센터로 다양한 여행 콘텐츠를 안내할 예정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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⑫ 완벽한 날들

아담한 게스트하우스와 서점이 공존하는 ‘완벽한 날들’은 이미 북 마니아들에게 널리 알려진 공간이다. 고른 책을 서점 안 테이블에서 커피 한 잔 주문해 마시면서 볼 수 있다. 가장 돋보이는 건 배치한 책들. 베스트셀러는 아니지만, 우리 삶의 소소한 재미와 철학을 담은 양서들이 많다. “책이 매개가 돼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서 열었다”는 최윤복(36) 대표는 “(게스트하우스를 포함한) 이 공간이 ‘여행자의 조용한 쉼터’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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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르망드도사

이 지역을 소개하는 지도 ‘동명바람’을 차철호·강형은씨 등과 만든 최주영씨가 운영하는 카페. 현재 공사 중이다.

더 키친 바이(by) 울 엄마

‘옛날 통닭’, ‘모츠나베’, 스지탕 등을 파는 일본식 선술집이다.

속초(강원도)/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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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속초 동명동 일대 게스트하우스

“속초 여행은 처음이에요. 무엇보다 ‘게하’(게스트하우스) 가격이 저렴하고 갈 곳이 많아 좋아요.” 지난 10일, 강원도 속초시 속초시외버스터미널 뒷골목에서 만난 이해나(25)씨의 말이다. 전주에서 언니와 여행 왔다는 그는 빌린 자전거를 게스트하우스 ‘소호259’에 반납하려는 참이었다. 속초시 동명동 일대를 다니다 보면 유난히 배낭을 멘 20~30대를 많이 만난다. 몇 년 전부터 확고하게 자리 잡은 게스트하우스 문화 때문이다. 더구나 여름 휴가철이 지난 요즘 이 지역 게스트하우스 숙박비는 저렴한 편이다. 1만5000원부터 3만원대가 대부분이다.

이 지역 게스트하우스 문화 형성의 출발은 2008년께 문 연 ‘더 하우스 호스텔’이다. 주인 유효준(46)씨는 2000년대 초반 고향 속초로 와 부모가 운영하던 여관 ‘서울장’을 바꾸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게스트하우스는 낯선 숙박시설이었다. 여러 나라의 엽서, 세계 지도, 각종 아기자기한 소품 등을 걸어둔 더 하우스 호스텔은 우연히 방문했던 외국인들 중심으로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세계적인 호스텔 예약 플랫폼 ‘호스텔월드’가 선정하는 ‘아시아 톱’에 3번이나 수상했다고 한다. “지금도 우리 손님의 70%는 외국인이다.” 방문한 11일에도 포르투갈, 프랑스 등에서 온 유럽인뿐만 아니라 동남아 등에서 온 이들로 북적거렸다. 지금 이곳 4인실은 1인당 1만8000원, 싱글 룸은 2만5000원, 더블 룸은 3만5000원이다. 이곳을 찾는 한국 젊은이들도 늘면서 주변에 게스트하우스가 생기기 시작했다.

더 하우스 호스텔 바로 옆엔 ‘헤리티지’가 있다. 언뜻 보면 폐가처럼도 보이지만, 인기 있는 게스트하우스 겸 펜션이다. 윤정웅(59)·윤영빈(29) 부자가 운영한다. 바비큐를 주문하면 마당에 한 상 차려준다. 가족이 함께 묵으면서 식사도 해결할 수 있는 룸이 많다. 윤정웅씨는 “5년 전 문 열었는데, 주로 학생 손님이 많다”고 말한다.

‘빨간등대 게스트하우스’, ‘하루게스트하우스’ 등도 있다. 주로 여성 손님이 많다는 ‘완벽한 날들’은 아늑하고 고즈넉하다. 마치 명상센터처럼 나 자신을 돌아보기에 더없이 포근하고 조용한 곳이다. 반면 숙박한 다른 이들과의 소통을 기대하는 이라면 바로 옆에 있는 ‘소호259’의 문을 두드리는 게 좋다. 각종 이벤트 프로그램이 준비된 편이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속초(강원도)/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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