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0.30 20:40
수정 : 2019.10.31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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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타이 중부 카오야이 국립공원 ‘사이손’ 저수지에서 미역감는 야생코끼리들. 저수지 건너편에서 망원렌즈로 촬영했다. 김선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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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코끼리 여행
낯선 생명체와의 만남, 그건 외부세계와의 황홀한 접속
육중하지만 섬세하며 어울려 미역 감기 좋아하는 코끼리
박쥐 떼·코뿔새·긴팔원숭이가 초대하는 열대의 숲
야생동물 ‘저택’ 카오야이에서 경험한 원시의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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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타이 중부 카오야이 국립공원 ‘사이손’ 저수지에서 미역감는 야생코끼리들. 저수지 건너편에서 망원렌즈로 촬영했다. 김선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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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달 전, 백령도 점박이물범을 처음 본 순간을 잊지 못한다. 감히 귀엽거나 징그럽다고 판단할 겨를도 없이 낯선 생명체 앞에서 꼼짝없이 얼어붙었다. ‘완벽한 타인이 된 기분’이라고 뒤늦게 수첩에 끄적였던 것 같다. 이젠 그 기분을 ‘기쁨’이라고 쓴다. 난생처음 다른 인종을 봤을 때 느낀 호기심, 왠지 모를 뿌듯함 같은 거랄까. 더군다나 인간과 교류하지 않는 생명체와의 조우란 극단적인 외부세계와 접속하는 기쁨을 준다. 내 안에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감각이 외부를 향해 깨어난다.
매머드나 그의 가까운 친척 아시아코끼리를 처음 본 인간들도 그랬을 것이다. 방패같이 생긴 얼굴에 3~5톤 육중한 체구(매머드는 7톤), 빛나는 상아를 뽐내는 코끼리를 넋을 잃고 바라봤을 옛사람들이 그려진다. 위협받으면 코로 휘감아 내동댕이치거나 발로 밟아 치명상을 입히지만, 평소 코로 수풀을 뽑아 입에 털어 넣고 상아로 무기염 많은 땅을 파먹는 생명체를 인간들은 오래도록 지켜봤을 것이다. 그러다 꽃이나 달걀도 집을 수 있는 손(코끼리는 코가 손이다)으로 냄새까지 맡는 이 섬세한 생명체와 인간은 금세 친해졌다. 이내 인간은 코끼리를 길들여 사냥, 전쟁, 벌목, 교통수단, 전시장에 동원했다. 상아를 탐한 밀렵꾼들은 야생코끼리를 숱하게 도륙했다. 야생 아시아코끼리는 얼마 남지 않았다. 1986년 멸종등급 ‘위기종’으로 분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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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야이 국립공원 ’사이손’ 저수지로 미역감으러 다가오는 야생코끼리들. 김선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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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타이 중부 카오야이 국립공원에서 야생 아시아코끼리를 만났다. 코끼리 10마리가 떼로 목욕하는 날이었다. 어미 코끼리는 아기 코끼리 엉덩이를 코로 떠밀며 물가로 데려갔다. 코로 물장구를 치던 아기 코끼리는 두 발로 서서 어미 코끼리 등에 올라탔다. 등이 불룩 솟은 연회색 가모장(가장의 권한을 갖는 여자) 코끼리가 신중하게 뒤를 지키는 동안 암컷·새끼 코끼리들은 안락한 물놀이를 즐겼다. ‘코끼리들도 친숙한 이들과 쉬고 놀고 장난칠 때 기쁨을 느끼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주변 사람들이 종종 꿈꾸는 삶을 그들에게서 봤다. 맘껏 먹고, 쉬고, 놀고, 단 외롭지 않게. 잠시 일상을 벗어나 꿈같은 시간을 보내는 여행도 그래야 한다. 자유롭고 풍요롭게, 혼자라도 쓸쓸하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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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야이 국립공원 ‘사이손’ 저수지에서 어미 코끼리가 아기 코끼리 엉덩이를 코로 밀고 있다. 김선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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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ESC는 타이 카오야이 국립공원에서 야생동물들을 만난 이야기를 전한다. 목욕하는 코끼리들, 무리 지어 비행하는 수백만 마리 박쥐 떼, 숲에서 노래하는 코뿔새와 긴팔원숭이, 밀림의 호화로운 ‘레스토랑’ 무화과나무가 야생의 세계로 초대한다. 지난 8일 밤 9시, 카오야이 숲의 밤공기를 들이마시며 느꼈다. ‘이렇다면 숨만 쉬어도 좋겠구나.’ 야생동물들이 사는 ‘저택’에 잠시 머무는 시간, 원시적인 기쁨은 이렇게 문득 찾아온다.
카오야이 국립공원(타이)/글·사진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참고서적 <코끼리 세계의 기둥>, <소리와 몸짓>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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