펫숍에서 ‘가족’을 찾는 구매자들은 처음부터 특정 견종을 원했다. 장모 치와와 종은 2015년 한 예능 프로그램에 등장하고난 뒤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
[애니멀피플] 사지마 팔지마 버리지마: 반려산업의 슬픈 실체
4회. 가족, 사는 사람과 버리는 사람
연예인이 키우거나 방송 탄 견종 위주 유행
웰시코기·실버 푸들·장모치와와·시바견 등
농장-경매장-펫숍도 유행 따라 생산·유통
하지만 인기도 잠시, 사랑 받을수록 더 많이 버려져
펫숍에서 ‘가족’을 찾는 구매자들은 처음부터 특정 견종을 원했다. 장모 치와와 종은 2015년 한 예능 프로그램에 등장하고난 뒤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
1~3회 이야기: 생후 40~50일이 된 강아지들은 경매장에서 15초만에 상품이 됐다. 강아지들은 외모에 따라 대략 30만원에서 많게는 100만원 이상에 팔려나갔다. 조건이 맞지 않는 강아지들은 수시로 유찰되고 반품됐다. 경매장을 떠돌다 자라난 강아지들은 8~9년 혹은 평생을 종·모견으로 살다 ’폐견’으로 버려졌다. 운 좋게도 사람의 선택을 받은 강아지들은 펫숍 진열장에서 굶주림과 낙상, 질병을 견디며 ‘가족’을 기다린다.
‘구체적’인 가족의 조건 펫숍에서 우리는 한국 반려견 산업의 ‘최종 소비자’들을 만났다. 펫숍에서 동물을 사가는 반려인들이었다. 그들은 처음부터 특정 견종을 원했다. 생명이 물건처럼 사고 팔리는 게 당연한 산업 구조 속에서 소비자들은 진열된 개를 고르고 흥정하는 데 무감각한 듯 보였다. 6월10일 월요일 저녁, △△펫숍을 찾은 어느 20대 여성은 펫숍 누리집에서 이미 마음에 드는 포메라니안을 보고 온 상태였다. 100만원짜리 포메라니안을 카드 할부로 결제했다. 포메라니안을 두 손에 받아든 그는 들떠보였다. 강아지 밥 그릇, 배변패드, 방석 쿠션 등을 함께 구매한 그는 숍에 들어온 지 20여분 만에 택시를 타고 사라졌다.
지난 4월 경기도 고양 킨텍스제 제2전시장에서 열린 ‘2019 프리미엄 펫쇼’에 출전한 비숑프리제 종들이 심사를 받고 있다.
|
‘예쁘지만 싼’ 가족을 원했다 펫숍을 찾은 다른 손님들도 대동소이했다. 예쁜 품종견이되, 가급적 값이 싸길 원했다. 펫숍이 준비한 강아지들 리스트도 그런 기호에 맞춰져 있었다. 우리가 일했던 두 펫숍 모두 대략 7~8종의 강아지를 팔고 있었는데, 주로 몰티즈, 푸들, 비숑, 포메라니안 등이었다. 6월초 와 7월 초 △△펫숍과 □□ 펫숍, 두 곳에서 진열하고 있던 강아지는 약 56마리였다. 이 가운데 몰티즈와 푸들이 11마리 가량으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으로 포메라니안 10마리, 비숑 8마리 순이었다. 경매장에서 통용되던 ‘외모 공식’은 이곳에서도 동일했다. 치와와는 작고 머리가 둥글어야 하고, 비숑은 머즐(주둥이)이 짧아야 했다. 반려견 관련 단체에서 발행하는 혈통서가 있거나 수입된 강아지라면 가격은 좀 더 올라갔다.
펫숍들은 여러 이유로 강아지 값을 내리거나 올렸다. 입간판으로 거리 광고를 하거나 누리집을 통해 여름 맞이 세일을 선전하고 있는 펫숍들. 사진 누리집 갈무리
|
장모 치와와가 많은 이유 소비자들의 이런 취향이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농장, 경매장, 펫숍 등을 취재하면서 알게 됐다. 올리브병원 박정윤 수의사는 “대중매체가 견종 유행을 만든다. 최근 치와와 중에서도 장모종이 많은 이유는 한 방송사 예능 프로그램에 해당 종이 출연하고 나서부터”라고 말했다. 유명 연예인이 키운다거나 특정 ‘스타견’이 방송에 출연해 화제가 되면 덩달아 인기도 높아진다는 것이다.
펫숍은 구매자의 취향에 따라 인기 있는 품종 위주로 동물들을 판매하고 있었다.
|
연예인 마케팅도 동원 유행을 따라 형성되는 ‘시장 논리’는 종종 공급과잉으로 이어진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번식업자는 “한국에 강아지들이 너무 많다. 최근에는 푸들이 3마리에 1만원에 팔리는 것도 봤다”고 말했다. 팔리긴 팔리지만 ‘싼 물건’처럼 밀어낸다는 것이다. 결국 펫숍은 고객 취향에 품종을 맞추는 동시에 이미 생산된 품종견의 판매를 더 독려하는 수밖에 없다. 광고와 홍보, 즉 마케팅이 시작되는 것이다. □□ 펫숍은 유명 연예인들의 분양 사진을 액자에 넣어 매장 곳곳에 걸어뒀다. 누리집에는 이 업체에서 분양을 받은 연예인만 소개하는 코너를 따로 마련해 뒀다.
유명 연예인의 분양 후기를 소개하는 코너를 따로 마련한 펫숍 누리집도 있다. 사진만 보아서는 모두 입양을 받은 것처럼 보이지만, 클릭해 들어가면 단지 매장을 방문한 내용만 적은 글도 여럿이었다.
|
전국배송은 기본 전국 수십여곳에 지점을 갖춘 어느 프랜차이즈 펫숍에서 일했던 김아무개씨를 나중에 만났다. 김씨는 지난 3월부터 두 달간 이 펫숍의 소셜 홍보글을 작성했다. 공식 누리집, 블로그, 인터넷 카페, 인스타그램, 심지어 중고물품 거래 어플에도 분양 홍보글을 올렸다. 본사가 제시하는 홍보 매뉴얼이 있다고 김씨는 설명했다. “제가 글을 올리고 단톡방에 알리면, ‘품앗이’라고 해서, 다른 지점 사람들이 댓글을 달고 ‘좋아요’를 눌러 인기글을 만들어요.” 지역명, 강아지 분양, 애완견 분양 등의 단어를 조합한 글을 작성해 포털 검색 상단에 노출되도록 만드는 요령도 익혔다.
포화된 분양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펫숍들은 24시간 분양상담, 전국 배송서비스, 지점간 연계 등으로 언제든 강아지를 사고 팔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 놓고 있다. 각 업체 홈페이지 갈무리
|
‘불가피’하면 파양? 그래도 안팔리는 강아지들이 있다. “이런 애들은 이제 분양장이 작아요.” 분양장을 청소하던 △△펫숍 사장은 5개월짜리 비숑 ‘한스’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강아지는 신이 난 듯 매장을 쫄쫄대며 탐색했다. □□ 펫숍에도 성견에 가까운 강아지들이 여럿 있었다. 펫숍이 다 자란 강아지들을 처분하는 방법이 있었다. 이른바 ‘책임 분양’이었다. 분양 뒤 병에 걸리거나 폐사해도 펫숍이 아무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잘 팔리지 않는 동물을 저렴한 가격에 파는 것이다. 최근에는 ‘책임분양’만 전문으로 삼는 신종 펫숍까지 등장했다. 보호자에게 ‘파양비’ 명목으로 돈을 받아 개를 데려와서 새로운 입양자에게 ‘책임비’를 받고 팔고 있다.(▶관련 기사/‘파양견’ 되파는 ‘신종 펫샵’…관리 사각지대)
반려동물 분양업체의 블로그에 있는 ‘키울 수 없는 반려동물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는 게시글의 일부. 이 업체는 반려인의 사망이나 질병, 이사나 이민, 출산 및 육아 등 “불가피한 상황”에 놓인 반려동물의 파양을 받아 새로운 입양처를 연결해준다고 홍보한다.
|
번식장, 경매장, 펫숍은 한국 반려동물 산업의 ‘블랙 트라이앵글’입니다. 국내 언론 가운데 처음으로 <애니멀피플>이 그 현장을 직접 취재했습니다. 한 달 동안 사전 취재와 자료 조사를 벌였고, 두 달 동안 전국의 강아지 번식장 4곳, 반려동물 경매장 6곳, 펫숍 2곳 등을 잠입 취재했습니다.
반려견 산업은 외부자의 접근을 철저히 막고 있습니다. 강아지 번식장을 취재하기 위해 기자들은 경기도의 한 상가를 임대해 관청으로부터 동물판매업 허가를 받았습니다. 엄격한 회원제로 운영되는 반려동물 경매장에 접근하기 위해 펫숍 사업자로도 등록했습니다. 펫숍에서 보름간 ‘알바’로 일하며 개가 물건처럼 사고 팔리는 현장도 기록했습니다.
돈의 논리로 굴러가는 한국 반려견 산업의 실체를 이제 영상과 글로 보여드립니다. 물건처럼, 때로 물건보다 못한 존재로 거래되는 생명을 구출하기 위한 텀블벅 펀딩도 준비했습니다. 동물의 친구, <애니멀피플> 친구들의 참여와 도움을 기다립니다.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