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8.20 18:36
수정 : 2019.08.21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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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9일 서울 성북구 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서 연구원들이 차세대 반도체 연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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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대책 ‘밑빠진 독’ 되지 않으려면
내년 R&D 예산 확대 기대 높지만…
‘대기업 인센티브 확대’만으론
중기 기술개발·사업화 힘들어
전속거래·단가깎기 관행 바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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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9일 서울 성북구 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서 연구원들이 차세대 반도체 연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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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소재·부품·장비의 일본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정부 대책이 대기업 협조가 없으면 ‘수조원짜리 밑 빠진 독’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중소기업의 기술 수준을 높여 대일 의존도를 낮추려면 산업계·학계·정부 등 사회 전반이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얘기다.
정부는 다음달 3일 국회에 제출할 내년 예산안에 소재·부품·장비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예산을 총액 기준 2조원 이상 반영할 예정이다. 최근 일본 수출규제 강화로 국산화 필요성이 더욱 부각되며 기존 정부 방침보다 예산이 더욱 많이 늘었다. 지난 19년 동안 소재·부품·장비 등 기술 개발에 투입된 정부 예산은 모두 5조4천억원(한해 2900억원 수준) 남짓이었다. 당·정·청은 1조6578억원 규모의 핵심 사업들에 대해서는 조기 착수가 가능해지도록 예비 타당성 조사(비용·이익 등 평가)를 면제하기로도 의견을 모았다.
중견·중소기업과 학계는 ‘예산 확대는 환영할 소식이지만 수요 기업들의 구매 확약이 없으면 세금만 낭비하는 꼴이 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반도체 분야에서 산·학 협력을 해온 ㄱ 교수는 “국산화가 1~2년 만에 쉽게 가능할 것이란 얘기들도 나오는데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라며 “기술을 개발해내는 것과 사업화를 시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얘기다. 국내 수요처가 명확해야 중소기업들이 지속 가능성을 보고 기술 투자에 나설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도 수요 기업과 공급 기업을 ‘연결’해야 국내 생태계가 조성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그 방법으로 정부가 채택한 것은 대기업에 대한 각종 인센티브 확대뿐이라 구속력이 약하다. 지난 5일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 대책’을 보면, 정부는 중소기업과 기술개발 초기부터 로드맵을 공유하거나 공동 연구개발을 추진하는 대기업에 자금·입지·세제·규제 특례 등을 ‘패키지’로 지원하겠다고 했다. 대기업 협조를 끌어내기 위한 유인책을 꺼내든 것이다. ㄱ 교수는 “정부도 수요 기업들의 커미트(약속)가 생태계 조성의 핵심이란 것을 알지만, 일본 때문에 사정이 어려워진 수출 대기업들 어깨에 짐을 더 얹어선 안 된다는 질타가 나올 것을 우려하는 것 같다”며 소극적인 정부 태도를 지적했다.
중소기업의 가격 경쟁력을 높일 대책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도체 소재 국산화에 수년 전 성공한 바 있는 한 기업의 관계자는 “노력 끝에 기술개발에 성공해 시장에 내놓으려고 하면 기존 일본 공급 기업들이 일순간에 가격을 3분의 1씩이나 낮춰버리곤 했다”며 “신뢰할 수 있는 기존 공급처가 더 싼값에 공급한다고 하니 거래선을 바꿀 수 없는 대기업들의 사정을 이해는 하지만,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소재 시장에 우리가 설 자리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핵심기술 인수합병(M&A) 지원 대책도 ‘상생 생태계’ 조성이 병행되지 않으면 대기업 중심의 수직 계열화 산업구조만 강화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정부는 국외 소재·부품·장비 전문기업 인수금액에 대해 2022년 말까지 대기업은 5%, 중견기업은 7%, 중소기업은 10%의 공제율로 법인세를 공제해주겠다고 밝혔다. 국내 소재·장비 기업 상당수가 영세한 상황임을 고려하면, 구매력이 큰 대기업에 혜택이 쏠릴 가능성도 있다.
노화욱 반도체산업구조선진화연구회장은 “원천기술을 가진 중소기업을 대기업이 일일이 인수합병하면 경영 효율화에도 좋지 않고 중소기업 생태계를 만드는 데도 악영향을 미친다”며 “대기업이 국내 중소기업 성장에 걸림돌이 돼왔던 상황을 개선하는 것이 핵심이다. 정부가 대기업의 구체적인 상생 약속을 공개적으로 받아내야 한다”고 했다.
최하얀 신민정 신다은 기자
ch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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