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20.01.10 09:32
수정 : 2020.01.10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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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권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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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권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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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상상하는 지옥의 풍경에는 늘 악마가 있다. 그런데 그들은 거기서 뭘 하는 걸까.
기독교 전통에 따르면 악마는 사람을 괴롭히는 일을 좋아한다고 한다. 지옥의 악마 역시 거기서 사람을 괴롭힌다. 그런데 지옥에 떨어진 사람은 누구인가. 착한 일을 하고 바른 생활을 한 사람은 아니다. 나쁜 짓을 한 나쁜 사람이 지옥에 간다고 우리는 생각한다. 그렇다면 악마는 악인이 받아 마땅한 벌을 악인에게 주는 셈이다. 악마가 신을 도와 정의를 행하는 걸까? 헛갈린다.
악마에 대해 생각하면 나는 머리가 혼란스럽다. 셰익스피어 같은 천재도 그랬나 보다. <헨리4세> 1부의 1막 2장에는 이런 대화가 나온다. 망나니로 유명한 폴스태프는 술과 고기를 먹으면 안 되는 ‘성 금요일’에 “포도주 한 잔과 식어빠진 닭고기 한 토막을 먹겠다”며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 친구들은 “폴스태프는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니 악마에게 약속한 물건을 줄 것”이라며 폴스태프를 놀린다. “그럼 악마와 약속을 지킨 죄로 지옥에 떨어지겠군.” “아니면 악마와 약속을 어긴 죄로 지옥에 떨어지거나.” 거짓 약속은 죄라던데, 그럼 악마를 속이는 일은 죄인가 아닌가. 헛갈린다.
신과 악마는 사이가 나쁘다고 알려졌다. 사사건건 어깃장을 놓고 반대 입장을 택할 것 같다. 그런데 지옥의 문제는 어떨까. 나쁜 사람한테 벌을 주라며 우리는 신에게 기도한다. 신의 처벌은 이승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우리는 선악의 외상빚을 갚을 공간, 즉 천국과 지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옥은 악마의 소굴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신에게도 악마에게도 지옥은 필요한 공간일까. 헛갈린다.
논리를 들이댈 문제는 아닐지도 모른다. 그래도 궁금하니 조금 따져보자. 첫째, 지옥이 신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공간이라면? 그렇다면 지옥에서 악마가 마음껏 설친다는 점은 설명이 된다. 하지만 신을 지지하는 쪽이 난처하다. 악마의 힘이 신과 비슷하거나 신보다 더 세다는 뜻이 되니 말이다. 선한 신과 악한 신 둘이 세상을 나누어 지배한다고 믿는 종교가 옛날에는 있었다고 하는데, 인기 있는 설명은 아니다.
둘째, 신의 힘이 한계가 없다고 치고, 지옥이란 “나쁜 사람들을 혼내주라”며 신이 악마에게 위임한 공간일 수도 있다. 신이 악마에게 ‘외주’를 맡기는 일이 도덕에 맞느냐는 문제는 잠시 미뤄두자. 신의 도덕은 인간의 머리로 헤아릴 수 없다는 말도 있으니까. 그 자존심 강한 악마가 신의 외주를 받을까? 지옥처럼 근무환경 나쁜 곳에 머물며 인과응보를 갚아주는 것은 충성스러운 천사도 하고 싶어 하지 않는 궂은일이다. 불교의 지옥에 있다는 야차는 이런 일을 한다. 그런데 야차는 불법을 수호하는, 천사에 가까운 존재(지옥의 논리적 모순을 불교가 피해 가는 방식이다). 악마는 다를 것 같다.
셋째, 신은 못 하는 일이 없으며 악마는 신의 뜻을 거스른다는 두 전제에 따라 이런 설명이 가능하다. 악마는 제 뜻대로 지옥을 누비는 한편 신은 인간이 헤아리지 못하는 심오한 이유로 이를 허용한다는 것이다. 논리는 맞다. 그 알 수 없는 이유란 무어냐 하는 점이 문제다. 마찬가지 ‘알 수 없는 이유’로 신은 현세에서 악을 허용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것이 철학에서 유명한 ‘악의 문제’. 지옥도 이승도 인간은 같은 문제로 힘들어한다.
김태권(지옥에 관심 많은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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