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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김포시 대명항에서 출발해 문수산성 남문 입구까지 이어지는 경기도 평화누리길 1코스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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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한겨레 공동기획
[DMZ 현장보고서] ⑥ 평화지대화
금강산 막힌 시민들 평화둘레길 걸으며 갈증 달래
남북 DMZ 평화지대화 논의 수십년째 진행중
개발·보전 원칙 세우는 마스터플랜·거버넌스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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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김포시 대명항에서 출발해 문수산성 남문 입구까지 이어지는 경기도 평화누리길 1코스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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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노을이 임진강 너머 북녘 산하를 붉게 물들였다. 10m 높이의 거대한 조각상은 노을이 비친 북쪽 땅을 향해 공손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남북이 서로 마음을 열고 화해와 평화의 길로 나가자는 뜻에서 이곳에 ‘그리팅맨’(인사하는 사람)을 세웠습니다. 마주 보는 북한 장풍군 마량산에도 같은 크기의 그리팅맨을 세워 남북이 서로 인사하며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존중하는 상징물을 만들고 싶어요.” 10월19일 오후 경기도 연천군 군남면 옥녀봉에서 만난 이 조각상의 작가 유영호씨는 이렇게 말했다. 닿을 수 없는 땅 위로 펼쳐진 하늘은 높고 드넓었다.
분단의 상처를 끌어안고 사는 사람과 달리 동물과 식물은 저마다의 활력과 생기로 전쟁의 상흔이 깃든 비무장지대(DMZ)를 평화의 보금자리로 바꿔놓았다. 최근 들어 북한이 금강산 시설물의 철거를 요구하는 등 남북관계가 급속히 얼어붙고 있는 상황에서도, 생태계의 보고인 디엠제트 일대를 평화적으로 이용하자는 논의는 활발히 진행 중이다. 사향노루, 수달, 흑고니, 검독수리, 개느삼 등을 비롯한 희귀 동식물의 서식처인 디엠제트는 공동경비구역(JSA), 판문점, 민통선, 휴전선 등 다른 곳에서 보기 힘든 다양한 역사문화자원이 존재해 보존 가치는 물론 활용가치도 높은 곳으로 손꼽힌다.
정부는 이 일대를 평화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지난 4월 강원도 고성에 이어 철원, 경기 파주 디엠제트에 ‘평화의 길’을 만들어 시범 개방했다. 평화의 길은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의 확산을 막기 위해 일시중단되기 전까지 졸속 개방이라는 비판 속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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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연천군 군남면 옥녀봉 정상에 세워진 10m 크기의 거대 조각상 ‘그리팅맨’이 북녘을 향해 인사를 건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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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의 문 여는 디엠제트 둘레길 북한 접경지역에는 디엠제트 펀치볼둘레길(양구), 파로호 산소 100리길(화천), 한탄강 주상절리길(포천·연천), 의주길(파주), 고양누리길(고양) 등 지역 특성을 살린 둘레길이 여럿 조성돼 평화를 갈망하는 탐방객의 갈증을 달래주고 있다. 대표적인 둘레길로는 김포~고양~파주~연천 등 경기도 접경지역 4개 시·군에 조성된 ‘평화누리길’(189㎞)이 꼽힌다.
이 길 가운데 대명항에서 출발해 문수산성 남문~애기봉 입구~전류리포구까지 이어지는 김포 구간(39㎞)은 염하강과 조강을 두고 마주 선 북녘땅과 김포평야의 철새를 관찰할 수 있는 곳으로 탐방객에게 인기다. 행주산성~호수공원을 지나는 고양 구간(19㎞)과 동패동~성동사거리~반구정~율곡습지공원~장남교를 잇는 파주 구간(68㎞)에는 한강, 임진강을 따라 한적한 농촌마을이 아늑하게 펼쳐진다. 마지막 연천 구간(63㎞)은 장남교~숭의전지~군남댐~신탄리역을 지나 철원 경계까지 옛 영화를 간직한 고랑포와 임진적벽의 경치를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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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화천군 동촌리에 1987년 조성된 ‘평화의 댐’. 당시 전두환 정부가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북한의 수공 위협을 과장되게 발표해 국민모금운동으로 건설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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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체육관광부 등 5개 부처가 43억여원을 들여 만든 ‘디엠제트 평화의 길’은 비무장지대가 민간에 개방된 첫 탐방로다. 고성 금강산전망대에서는 금강산 주봉능선과 해금강, 동화 <선녀와 나무꾼>의 배경인 감호, 사공바위, 외추도 등 북한의 명소를 멀리서나마 감상할 수 있다. 정부는 평화의 길이 지난해 9·19 남북군사합의 이행 사업이자 ‘비무장지대 세계평화공원’의 초기 사업이라고 설명했다.
평화의 길에 이어 강화에서 고성까지 걸어서 한반도 동서를 횡단하는 456㎞ 길이의 ‘디엠제트, 통일을 여는 길’ 조성도 추진 중이다. 행정안전부는 2022년까지 286억원을 들여 ‘한국의 산티아고 길’을 만들겠다고 지난해 12월 발표했다. 이를 통해 연간 1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을 유치하고, 2500억원의 경제효과를 창출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목표다.
하지만 이런 정부의 일방적 사업 추진에 대한 우려도 크다. 녹색연합과 환경운동연합 등 환경단체들은 “생태계에 대한 영향과 국민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가 충분히 검토되지 않은 채 3개월 만에 탐방로를 졸속으로 조성해 사람들을 끌어들였다”고 비판했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소장은 “디엠제트 일대에서 계획한 사업은 북한과 공감이 이뤄져야 한다”며 “전쟁과 분단의 상처를 성찰하고 기억할 수 있는 사업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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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파주시 임진각에 전시된 증기기관차(왼쪽). 6·25 전쟁 당시 폭격을 맞아 비무장지대 장단역 인근에 멈춰 선 것을 임진각으로 옮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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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진행형인 디엠제트 평화지대화 디엠제트를 평화지대로 만들자는 논의는 남북, 북-미 간 정치적 상황에 따라 부침을 겪고 있지만 오랜 시간 꾸준히 진행됐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9월 유엔 총회 연설에서 비무장지대를 국제 평화지대로 만들자는 제안을 한 데 이어, 10월23일 펠리페 6세 스페인 국왕과의 정상회담에서도 “비무장지대가 스페인의 산티아고 길처럼 평화의 길이 되어 세계인이 함께 걷게 되길 기대한다”며 강한 의지를 보이는 상황이다. 스페인과 프랑스 접경에 자리한 807㎞ 길이의 산티아고 길은 연간 600만명이 방문해 1조원 규모의 경제 효과를 거두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박근혜 전 대통령도 2013년 미국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구축의 목적으로 ‘디엠제트 세계평화공원’ 조성 계획을 발표해 접경지역 지방정부들이 치열한 유치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제안은 남북 교통망 연결, 임진강 유역의 재해 방지와 수자원 공동 이용, 자연환경 보전·관리, 남북 공동어장 관리와 산업협력, 문화·역사 자원 발굴·복원, 한강 하구 뱃길 열기, 통일경제특구 조성 등 다양하게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런 구상은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전제조건 아래에서 디엠제트에 대한 남북 간 공동개발·이용에 관한 협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실행이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과 관련한 남북 간 첫 합의는 노태우 정부 때인 1991년 채택된 남북기본합의서다. 남북 간 화해, 불가침, 교류협력을 규정한 이 합의서를 토대로 남북은 군사공동위원회를 꾸려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 등 협의에 나섰지만, 이듬해 한-미 연합훈련인 팀 스피릿 훈련을 싸고 논란이 일면서 이행이 무산됐다.
2000년 김대중 정부의 6·15 공동선언은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이 현실화된 첫 사례다. 같은 해 9월 제주에서 열린 국방장관회담에서 남북은 철도·도로 연결을 위한 군사보장합의서에 합의해 1번·7번 국도와 경의선·동해선 철도가 연결됐다. 2007년 노무현 정부 때 합의한 10·4 남북공동선언에는 군사적 긴장 완화와 신뢰 구축, 경제협력사업 활성화, 백두산 관광 등의 내용이 담겼으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관련 약속은 없던 일이 됐다.
남북은 지난해 4·27 판문점선언과 9·19 군사합의를 통해 비무장지대의 평화지대화, 서해 평화수역 조성 등에 합의하고 지피(GP·감시초소) 10곳 파괴와 공동경비구역 비무장화, 한강 하구 수로 조사 등을 이행했다. 하지만 공동 유해발굴과 군사공동위원회 구성 등은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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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강을 사이에 두고 북과 인접한 경기도 파주시 자유로에 차들이 쉴 새 없이 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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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발·보전을 위한 협치 필요 전문가들은 디엠제트에 평화지대를 조성하자는 논의가 결실을 보기 위해서는 국내는 물론 남북 간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최완규 신한대 탈분단경계문화연구원장은 “분단체제를 해소하는 평화 프로세스 정착을 위해서 긴 호흡의 거버넌스(협치) 구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거버넌스 과정이 없는 대북정책은 다음 정권에서 승계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정책의 연속성이 담보되지 않는다. 1994년 발표한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이 지금도 인정받는 것은 다양한 거버넌스 과정을 거쳐 야당의 동의와 협력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남북 간의 인식 차를 줄이는 데 노력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은진 국립생태원 경영기획실장은 “디엠제트의 보전가치에 대한 국민의 인식도는 높으나 실제 남북 간 군사적 합의에 따라 이행되고 있는 평화지대화는 보전가치의 훼손 가능성이 있다”며 “남북이 더욱 시간을 갖고 디엠제트의 가치에 대한 인식을 공유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 박경만 기자
mania@hani.co.kr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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