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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0.07 14:41 수정 : 2019.11.05 10:46

막내(왼쪽)와 그의 딸 쭈니.

[애니멀피플] 엄지원의 개부담

막내(왼쪽)와 그의 딸 쭈니.

막내와 쭈니. 치와와 모녀와 함께 사는 엄지원 기자가 ‘독박 반려인’이 주는 기쁨과 보람과 역경(?)을 공유하는 ‘엄지원의 개부담’ 연재를 시작합니다.

동안은 우리 집안의 내력이다. 올해 일흔다섯을 맞은 아버지는 작은 체구, 큰 눈 덕에 여전히 ‘귀염상’이다. 그를 빼다박은 우리집 치와와 둘도 작은 체구에 커다란 눈을 가졌다.

둘이 합쳐 중량 3㎏. 체지방 하나 허락하지 않는, 군살 없는 몸매. 치와와 중에서도 특별히 작은 몸뚱이를 가진 이 친구들과 산책을 나서면 사람들은 거부할 수 없는 귀여움에 탄성을 내지른다. 이윽고 다가와 그들의 연령을 확인하며 내 답을 듣곤 다시 한 번 까무러치곤 한다.

“하나는 11살이구요, 하나는 13살이에요.” 밥풀떼기처럼 귀여운 얼굴들만 봐선 상상하기 어려운 관록이다. 그러나 이 녀석들이 걸어온 삶의 여정을 알게 되면 사람들은 다시 한 번 탄식할지 모른다. 이 녀석들이 함께 견뎌온 슬픔의 길, 고요한 수련의 길. 손바닥만 한 짐승들이 가슴에 묻은 상실의 역사를 알게 되면 말이다.

막내(왼쪽)와 그의 딸 쭈니.

치와와들의 이름은 ‘막내’(13)와 ‘쭈니’(11)다. 쭈니의 엄마인 막내는 우리집 거실에서 태어났다. 막내의 엄마 ‘깜자’가 막내와 세 언니를 낳았다. 우리는 꼬물거리는 새 생명을 깜자의 배에서 나온 순서대로 첫째, 둘째, 셋째, 막내로 호명했다. 이미 우리 가족은 중년의 페키니즈(밍키)와 깜자를 거두고 있었고, 깜자의 아기들은 입양 보낼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삶은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유난히 체구가 작고 초라해 보였던 막내는 끝내 입양되지 못했다. 생각지 않게 우리집에 눌러앉은 막내에게 우리는 새 이름을 지어주지 못했다. 사랑받아 마땅한 이 반려견에게, 조금 민망할 정도로 무성의한 이름이 평생 따라붙은 것은 그런 연유다. 막내는 박막례 할머니처럼 나이가 들어도 영원히 ‘막내’로 남게 되었다.

막내(왼쪽)와 그의 딸 쭈니.

막내가 우리집에 눌러앉고 얼마 되지 않아 깜자는 불의의 사고로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막내 견생의 첫번째 커다란 상실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막내가 사람 나이로 세 살이 되던 해 쭈니 자매를 낳았다. 어느 심야 동물병원에서 쭈니는 제왕절개술로 세상에 나왔다.

소형견들의 출산은 건강에 그리 좋지 않다고 들었던 나는 막내의 임신과 출산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결론적으론 잘한 일이었다. 이별과 상실뿐이었던 막내의 삶에 영원한 친구인 쭈니를 선물했기 때문이다.

쭈니가 태어나고 이듬해, 막내와 나는 ‘우리 엄마’를 잃었다. 깜자가 막내의 생모라면 우리 엄마는 막내의 진짜 ‘엄마’이자 견주였다. 나에게 그러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엄마는 막내에게 밥을 주는 사람이었고 온종일 집에서 온전하게 막내를 사랑해주던 사람이었다. 우리는 졸지에 엄마 없는 하늘 아래 살게 되었다.

그 일로부터 몇 달 지나지 않아 노견인 페키니즈 밍키도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짧은 견생에 너무 많은 상실을 막내는 겪어야 했다.

‘어느 사이에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살게 된’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처럼, 나 역시 가족들을 이리저리 떠나보내고 덩그러니 혼자 남게 되었다.

몇 년 새 함께 살던 가족도 모두 흩어졌다. 언니는 결혼하고, 아버지는 지방으로 내려갔다. 삼십대 후반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인 독거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비자발적’ 독박 반려인의 삶이 시작되었다.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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