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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그램에 퍼지는 성착취① 피해자 심층 인터뷰
철벽보안 악용한 계정 ‘박사’
돈 급한 여성들 ‘알바’로 유인
개인정보 빼내 나체사진 등 요구
‘노예녀’라 칭하며 대화방에 유포
피해자 20명 넘어…경찰 수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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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그램. 러시아의 두로프 형제가 개발하고, 독일 엘엘피(LLP)사가 운영 중인 오픈 소스 인터넷 모바일 메신저다. 서버 코드 암호를 깨는 사람에게 상금을 주는 해킹 대회를 열 정도로 철벽 보안을 자부한다. 국내에선 2014년 ‘카카오톡 사찰 사건’ 때 벌어진 ‘사이버 망명’ 사태를 통해 유명해졌다.
그런 텔레그램이 여성과 아동·청소년에게 성착취의 고통을 안기고 있다. 강력한 보안은 뜻밖에도 성착취물마저 비밀스레 유통할 수 있는 세계를 보장했다. 텔레그램의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유통 사실을 최초 고발(▶
관련 기사 : [단독] 청소년 ‘텔레그램 비밀방’에 불법 성착취 영상 활개)한 <한겨레>가 피해자들을 심층 인터뷰하고 가해자 주변을 추적해 텔레그램 성착취의 세계를 탐사했다.
20대 초반인 최지수(가명)는 3년 전 수중에 돈 한 푼 없이 타지 생활을 시작했다. 은행 대출로 간신히 살 곳을 구하고 생활비를 마련했지만, 대출 이자와 밀린 월세가 감당할 수 없이 불어났다. 대부업체를 찾아야 하나 고민하던 순간, 트위터에 올라온 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홍보 아르바이트를 하면 300만~600만원을 한 번에 지급한다는 구인글이었다. 이 글에는 텔레그램 아이디가 함께 적혀 있었다. 최지수는 곧바로 텔레그램에 가입하고 ‘알바 구인글 보고 연락드렸습니다’라고 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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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박사’라는 계정이 응답해왔다. 박사는 최지수를 비밀 대화방으로 불렀고, 텔레그램 전화하기 기능으로 전화를 걸어왔다. 제안은 간단했다. “홍보 알바와 ‘스폰 알바’가 있다. 스폰 알바는 돈이 바로 지급된다”고 했다. ‘스폰’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은 없었다. 최지수는 박사가 연결해주는 ‘매칭남’과 만나서 식사하고 시간을 보내는 일 정도로 생각했다. 박사는 사무적인 말투였지만, 호감을 주는 20대 후반~30대 초반 정도의 젊은 남성 목소리였다. 전화기 너머로 여성 직원들이 마치 콜센터에서 상담하는 듯한 소리도 들렸다. 박사는 “우리 회사는 인증된 회사”라며 최지수를 안심시켰다. “개인정보 유출 위험이 있으니, 돈을 받기 전까지는 매칭남에게 개인정보를 절대 보내지 마라”는 걱정 섞인 당부까지 했다.
이후 박사는 선지급을 위해 필요하다며 최지수에게 얼굴과 주민등록증이 함께 담긴 사진을 찍어 보내라고 했다. 계좌번호와 연락처도 요구했다. ‘대출받을 때도 주민등록증 사진은 자주 찍었으니까 이상할 건 없다’고 최지수는 생각했다. 최지수의 첫번째 착각이었다. 원하는 걸 모두 받은 박사는 “남성이 매칭됐다”며 “곧 연락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매칭남’은 텔레그램 비밀 대화방으로 말을 걸어왔다. 계정 이름은 ‘폭스밤’이었다. 폭스밤은 최지수를 상대로 ‘기괴한 면접’을 진행했다. 처음에는 꼭 새끼손가락을 펴고 찍으라며 얼굴 사진 몇장을 요구하더니, 급기야 나체 사진을 요구했다. 몸과 얼굴이 같이 나오면 5장, 얼굴이 안 나오면 10장을 보내야 한다고 했다. ‘뭔가 잘못되고 있다’고 느낄 무렵, 갑자기 박사가 통장 사진을 보내왔다. “지금 우리 통장에 매칭남이 160만원을 보냈다. 사진을 보내면 바로 이 돈을 입금해주겠다”고 했다. 망설이던 최지수는 나체 사진과 가슴 사진 7장을 폭스밤에게 보냈다. 폭스밤과의 텔레그램 대화방은 대화 내용이 3초 뒤면 자동으로 삭제되도록 설정되어 있었다. “비밀 대화방이라 금세 지워지니 그 사람만 잠깐 보고 마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최지수의 두번째 착각이었다.
폭스밤의 요구는 점점 더 엽기적으로 변했다. 속옷을 머리에 뒤집어쓴 사진을 보내라고 했다. 최지수가 머뭇거릴 때마다 어찌 알았는지 박사가 등장했다. “이제 마지막이다. 이것만 하면 돈이 계좌로 바로 들어갈 것”이라고 했다. 좋지 않은 예감과 돈에 대한 간절함 사이에서 고민하던 최지수가 용기를 내어 폭스밤에게 “더 이상 못하겠다”고 말하자, 이번에는 박사가 텔레그램으로 전화를 걸어왔다. 목소리는 이미 차갑고 날카롭게 변해 있었다. “씨X, 좋게좋게 하자. 얼른 영상 보내. 돈 안 받고 싶냐?”
이후 박사는 최지수에게 나체 상태로 카메라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잘못했다”고 비는 영상을 찍으라고 요구했다. 최지수는 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박사가 사진을 보내왔다. 최지수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친구 목록이었다. “내가 네 친구들 연락처 다 땄다. 이제 전송 버튼만 누르면 너의 나체 사진이 친구들한테 갈 것”이라고 했다. 발아래가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다. 짧은 순간, 홀린 것처럼 어떤 단계들이 흘러가더니 순식간에 모든 것이 파괴됐다. 최지수는 곧바로 비밀 대화방에서 나온 뒤 텔레그램을 삭제했다. 텔레그램을 지우면 악몽 같던 그 순간도 지워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세번째 착각이었다. 지독한 현실이 닥쳐오는 데 한 시간이 걸렸다. 알 수 없는 누군가가 ‘지금 텔레그램방에서 지수씨의 사진이 유포되고 있으니 더 이상 박사에게 사진을 보내지 말라’는 메시지를 다른 에스엔에스 계정을 통해 보내왔다. 최지수는 이미 박사가 개설한 텔레그램 비밀 대화방 여러 곳에서 ‘텔레그램 단 하나의 별, 박사의 노예 ○○녀’로 불리고 있었다. 박사가 만든 방에서 수천명이 최지수의 나체 사진을 ‘관전’했다. 박사가 최지수를 자신의 노예라고 소개하면, 관전자들은 키득대거나 최지수의 몸을 품평하며 성착취 발언을 쏟아냈다. 최지수는 전화번호를 바꾼 뒤 살던 집에서도 나와 친구 집으로 피신해야 했다.
최지수의 피해는 박사가 텔레그램 비밀 대화방을 통해 여성을 성착취하는 수법의 전형이다. <한겨레>는 이런 방식으로 박사에게 성착취 피해를 당한 여성이 최소 20명 이상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피해 여성 중에는 청소년도 있었다. 박사는 피해 여성들을 협박해 성착취 동영상을 제작한 뒤 관전자들이 있는 별도의 텔레그램 대화방에 이를 유포했다. 박사가 유포한 영상 속 여성들은 자신의 몸 위에 ‘노예’, ‘박사’ 등의 글씨를 쓴 뒤 나체로 사진을 올리거나 몸에 상처를 낸 뒤 사진을 찍었고, 나체로 물구나무서기를 하는 등 엽기적인 행위를 하기도 했다. 관전자들은 성착취 피해 여성들에게 점점 더 자극적이고 가학적인 영상을 요구하면서, 동시에 이 요구를 이행해내는 박사를 왕처럼 모시고 추종했다.
역시 자신을 20대 여성이라고 소개한 이은혜(가명)도 박사가 만든 기괴한 면접의 피해자다. 이은혜도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아 극심한 생활고를 겪으며 급전이 필요하게 됐고, 최지수처럼 트위터에서 ‘스폰 알바’를 구한다는 글을 보고 박사와 텔레그램으로 연락했다. 이은혜도 역시 남성을 만나 간단히 밥을 먹고 시간을 보내면 된다고 생각했다. 박사는 이은혜와도 신뢰 관계를 형성해 얼굴과 주민등록증이 함께 담긴 사진 등 개인정보를 확보했다. 그리고는 돌변해 나체 사진과 눈을 뒤집어 까는 표정의 얼굴 사진, 나체 상태로 몸을 흔드는 영상 등을 찍어 올리라고 요구했다.
이은혜는 2주 뒤 자신의 사진과 영상들이 박사가 운영하는 텔레그램 비밀 대화방에서 유포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 비밀 대화방에는 이은혜의 집 주소까지 공개됐다. 관전자들은 “저 집으로 찾아가서 같이 ‘돌림X’하실 분 구합니다”라며 성폭행 의사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이은혜도 텔레그램을 탈퇴하고 전화번호도 바꿨다. 그래도 불안함이 가시지 않아 휴대전화에 112를 저장해뒀다. 우울증이 심해져 약을 복용하고 있다.
<한겨레>가 확인한 박사의 범죄는 철저히 ‘협박’을 기반으로 한다. 박사는 피해 여성의 신상 정보를 검색해 그 여성의 에스엔에스 계정을 찾아내고, 가족이나 친구 등 지인들의 연락처를 알아낸다. 이 작업이 완료된 뒤에야 ‘매칭남’을 소개하고 ‘면접’을 진행하며 요구하는 사진의 수위를 높여간다. 피해 여성이 거부 의사를 밝히면 협박이 시작된다. “성매매하려 했다고 가족들에게 알리겠다”, “내가 네 친구들, 가족들의 이름과 연락처, 주소를 다 안다”는 겁박이다. 돌변한 박사의 태도에 넋이 나가면, 은밀한 탈출 방법을 제안한다. “돈이 들어왔다. 이제 마지막이다. 이것만 찍으면 돈이 입금될 것”이라는 식이다. 그래도 거부하면 “너의 집 앞으로 내 직원들을 보내서 죽일 것”이라는 살해 위협까지 한다. 끝내 돈은 입금하지 않고, 여성이 모든 걸 포기한 채 박사의 요구에 순종해야만 끝을 볼 수 있다. 피해 여성은 대화 기록이 이미 사라졌기 때문에 협박과 강요의 증거를 모을 수도 없다.
박사는 이렇게 만들어낸 성착취 영상을 텔레그램 대화방에 올리면서 적게는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100만원이 넘는 ‘입장료’를 내걸고 관람자를 유치한다. 박사의 비밀 대화방에선 ‘모든 거래는 비트코인으로만 한다’고 명시돼 있다. 피해자 유인부터 사진과 영상 유포, 거래까지 모두 흔적을 남기지 않는 은밀한 방법이다.
박사는 성착취 피해 여성들을 자신의 ‘노예’라고 부른다. 박사는 피해 여성들의 개인정보와 사진, 영상을 묶은 뒤 이들과 전혀 상관없는 스토리를 창조해 유포한다. 피해 여성들에게 사진과 영상을 찍을 때 새끼손가락을 들게 한 건, 이 성착취물이 박사의 ‘작품’임을 알리는 동시에 피해 여성들이 자신의 ‘노예’ 리스트에 트로피처럼 소장되어 있음을 알리는 ‘워터마크’다. 몸에 ‘박사’, ‘나는 노예입니다’ 등의 글씨를 적고 사진이나 영상을 찍게 하는 것도 피해 여성들을 소유물로 만들고자 하는 일종의 마킹이다. 박사는 1만명이 넘게 들어와 있는 텔레그램 비밀 대화방에서 어떻게 여성을 착취해 영상을 찍게 만들었는지를 다룬 소설 형식의 글을 써내려가기도 했다. 관람자들은 이 소설을 읽고 “제발 노예녀 영상을 더 풀어달라”며 환호한다.
인격 살해와 다름없는 성착취물이 유통되는 텔레그램 비밀 대화방은 올해 초부터 급격히 늘기 시작했다. 경찰은 피해 여성 일부의 신고를 접수해 박사의 범죄와 이에 동조한 가해자들을 수사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박사는 반드시 잡을 것”이라며 “검거를 위해 최대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텔레그램의 철벽 보안 시스템과 주고받은 메시지를 수시로 삭제하는 박사와 가해자들의 증거 인멸로 인해 추적이 쉽지 않다. 이를 아는지 이들은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도 불법촬영물과 아동·청소년 성착취 동영상을 버젓이 유통했다.
“제가 본 텔레그램 방에는 저보다 더 어린 피해자들도 있었어요. 그 피해자들이 일단 희망을 잃지 않고 잘 버텼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박사란 사람 꼭 검거해서 합당한 처벌을 받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꼭 좀 잡아주세요, 제발.” 이은혜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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