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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20.01.03 19:57 수정 : 2020.01.04 02:30

안철수 전 의원이 지난해 9월29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 마라톤 대회에서 완주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안철수 전 의원 지지모임 제공

[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안철수 전 의원이 지난해 9월29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 마라톤 대회에서 완주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안철수 전 의원 지지모임 제공

호모사피엔스 출현 이래 줄곧 ‘먹고사는 일’에 견줄 만큼 절실한 문제는 드물었다. 우리 역사를 돌이켜봐도 보릿고개가 사라진 건 겨우 반세기 전쯤이다. 그러니 신앙도 인륜도 이념도 밥 앞에선 철없는 반찬 투정이다. 무릇 대부분의 다툼은 내 그릇에 담길 밥의 양 때문에 벌어진다.

정치의 가장 중요한 구실도 공동체 구성원 각자의 그릇에 돌아갈 밥의 양을 결정하는 일이다. 그 결정이 정당성을 가지려면 공동체 구성원 누구라도(혹은 그의 대리인이라도) 밥상에 숟가락 하나 얹을 권리는 허용돼야 한다. 힘센 소수가 독점하는 밥상은 언젠가는 배제된 자들의 성난 발길질에 뒤엎어지기 십상이다. 그러니 정치의 본령은 이해관계의 조정이며, 그 정치에 의해 움직이는 국가공동체는 협상과 타협으로 운영되는 밥상공동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이 밥상공동체를 움직여온 양대 주체는 자유한국당 계열의 보수정당과 더불어민주당 계열의 자유주의(리버럴) 정당이었다. 소선거구제(1지역구 1대표)와 단순다수대표제(최다 득표자 1인만 당선)가 결합한 ‘1988년 선거법’의 산물이다. 물론 원내 의석을 차지한 3, 4당은 언제나 있었다. 그러나 교섭단체 구성요건을 갖추지 못한 군소 정당이 의회 안에서 독자적 목소리를 내는 게 불가능했다. 의사일정과 안건 상정 등 의회의 핵심 의사결정은 늘 밥상머리를 양분한 교섭단체끼리의 협상에서 이뤄졌기 때문이다.

2016년 치른 20대 총선은 이 양당 구도를 3당 구도로 바꿔놓았다. 제도 변경 없이 유권자의 표심만으로 일궈낸 변화였다. 그 결과 탄생한 20대 국회는 양당 구도라면 쉽지 않았을 탄핵안 가결을 성사시켰고, 지난해에는 ‘4+1 협의체’를 통해 공직선거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안의 패스트트랙 지정과 본회의 의결을 이끌어냈다.

다당 구도는 양당 구도에서 볼 수 없었던 여러 차이를 만들어낸다. 20대 국회만 하더라도 밥상머리 참가자 하나가 늘어났을 뿐이지만, 둘러앉은 이들끼리의 상호작용 양상은 참가자가 둘일 때와는 질적으로 달랐다. 양자 구도에선 마주 보는 상대의 반응만 예측하면 됐지만, 참가자가 셋이 되면서부터는 마주 보는 상대뿐 아니라 이를 지켜보는 3자의 판단과 태도까지 계산하며 한층 복잡한 전략적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박근혜 탄핵 과정에서 민주당과 국민의당, 새누리당 비박계가 탄핵안 표결 시기를 두고 벌인 ‘밀당 게임’이 대표적이다.

선거법 개정 과정에서 이뤄진 ‘4+1 협의체’의 협상은 더 복잡했다. 지역구 감소를 막으려는 호남권 정당들과 석패율제가 절실한 정의당, 연동제 적용 의석을 어떻게든 줄여보려는 민주당의 이해관계가 충돌했다. 지루한 협상 끝에 나온 ‘4+1 수정안’은 애초 합의안에 견줘 비례대표 의석수가 줄고 연동형 캡까지 도입돼 개혁의 의미가 퇴색되긴 했어도, ‘제도적 다당 구도’로 전환할 디딤돌을 놓은 것은 분명히 평가받을 지점이다.

우리가 놓쳐선 안 될 사실은, 밥그릇 지키기에 필사적인 참가자들끼리 밥상을 엎지 않기 위해 차이를 좁히고 자기 몫을 줄여나가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타협의 산물이 ‘정치적 합의’란 점이다. ‘4+1 공조’에서 다당제와 합의제 민주주의의 문법을 ‘선행 학습’한 것은 한국 정치의 의미 있는 성과다.

새해 벽두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정치 재개를 선언했다. ‘총선 패싱’까지 점쳐지던 그의 느닷없는 복귀 선언은 선거법 개정에 따른 다당제의 안착 가능성과 한국당의 우클릭이 넓혀 놓은 ‘중간 지대’로 어느 때보다 ‘제3정당’의 성공 가능성이 커졌다는 판단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선거제 개편을 위한 필사적 노력을 바다 건너 구경만 하던 그가 제도 변화에 무임승차하려는 상황이 곱게 보일 리 없다.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 과정에서 그의 ‘직계’를 자처하는 의원들이 보인 기회주의적 처신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뒤늦게 숟가락 들고 틈새를 파고드는 이에게도 밥상머리에 앉을 기회는 막지 않는 것, 그것이 정치라는 밥상공동체의 윤리인 것을.

이세영 정치팀 데스크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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