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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20.01.04 14:17 수정 : 2020.01.06 14:22

이영문 국립정신건강센터장은 조현병 등 정신건강 문제가 사회 의제로 떠오른 상황에서 센터장이 됐다. 그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클리닉을 상시 운영하고 싶은 마음을 늘 갖고 있다”고 말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토요판] 은유의 연결
이영문 국립정신건강센터장

가운 입지 않고 공동체 치료
‘수용시설에서 지역사회로’
90년대부터 환자 편에 선 의사
‘의학은 가장 실천적인 인문학’

이영문 국립정신건강센터장은 조현병 등 정신건강 문제가 사회 의제로 떠오른 상황에서 센터장이 됐다. 그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클리닉을 상시 운영하고 싶은 마음을 늘 갖고 있다”고 말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정신의 아픔은 육체의 아픔에 비해 잘 감지되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정신은 병들어 있으면서도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정신의 아픔, 그것만 해도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자신이 병들어 있음을 아는 것은, 치유가 아니라 할지라도 치유의 첫 단계일 수는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자신을 속이지 않고 얻을 수 있는 하나의 진실은 우리가 지금 ‘아프다’는 사실이다’

이성복 시인은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1980년) 자서(自序)에 이와 같이 썼다. 시인은 고통의 맥을 짚는다. 같은 시집에 수록된 시 ‘그날’의 “모두가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라는 시구도 겉으로 발전하고 속으로 곪아가는 세태에 대한 긴 진단명으로 자주 인용된다. 예언이 되어버린 시인의 진단대로 우울증, 공황장애, 불안장애, 트라우마, 조현병 등 정신의 아픔을 겪는 이들이 늘고 있는데 우리는 이를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한다.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아픔’은 정신질환의 대표적인 증상이다. 우린 어떻게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들의 문제를 바로 볼 수 있을까.

“정신질환이 영원하다는 건 편견…질환은 특성이 아니라 상태”

질병인식 불능의 시대, 국민의 정신건강을 담당하는 국립정신건강센터의 이영문(59) 센터장을 찾아간 이유다. 그는 일찍이 정신질환의 사회적 치료를 고민한 젊은 의사였다. 30년 전인 1990년대에 ‘수용시설에서 지역사회로’라는 모토를 내세우며 환자의 편에서 목소리를 냈다. 관련 법률 제개정에 기여해 국민 포장을 받는 등 전문성이 인정돼 지난해 11월 제3대 국립정신건강센터장으로 임명됐다. 취임사에서도 “한 나라의 정신건강 문제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고자 하는 인간의 문제”임을 강조했다. 지난 12월19일 집무실에서 만난 이영문 센터장은 인터뷰 사진 촬영을 위해 하얀 가운을 걸치며 “십몇년 만에 입는다”고 말했다.

―가운을 안 입고 일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제 정신장애인 공부의 근원이 되는 것이 ‘치료공동체’예요. 영국에서 2차 대전 이후에 맥스웰 존스라는 사람이 창안했어요. 제가 레지던트를 시작할 때 우리나라에도 막 도입되어 치료공동체 모형으로 병실을 운영했어요. 예를 들면 회진이나 치료를 교수가 아니라 환자 시간에 맞추는 거죠. 취침시간 같은 병동 규칙도 투표로 같이 정하고요. 그런 치료공동체 규칙 중 하나가 ‘노 유니폼’이에요. 의사와 간호사는 가운이 없고, 환자들도 환자복이 없죠. 치료공동체는 환자와 의사의 수평적인 관계를 강조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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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 위한 인권클리닉 만들고파

그가 환자의 인권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는 ‘공부모임’이다. 1992년 ‘정신보건연구회’를 만들어 매주 월요일에 동료 의사들과 다른 나라의 정신장애인에 대한 사회정책, 역사, 법을 공부했다. 재활과 치료에서 인권까지 관점을 넓히며 정신보건 운동에 눈떠갔다. 치료가 되어 상태가 좋아져도 치료 과정에서 환자가 억압을 받을 수 있음을, 어느 것이 맞는다는 차원이 아니라 치료와 인권은 모순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이런 관점과 문제의식에 기반해 수원시정신보건센터를 시범적으로 운영하고, 대학에서 의료인문학을 가르치기도 했다. 이후 국립공주병원 병원장, 서울시 공공보건의료재단 초대 대표이사 등을 지냈다. 사람답게 산다는 건 무엇인가, 큰 질문을 품고 현장을 누비며 ‘의학은 가장 실천적인 인문학’이라는 소신을 키워간다.

―세계인권선언일인 지난 12월10일에 제주에 살던 트랜스젠더분이 우울증 끝에 자살한 사건이 있었어요. 성소수자, 청소년, 노인 등 소위 사회적 약자의 정신질환 발병률이 높은데요. 어떤 대책이 필요하다고 보세요?

“저희보다 더 높은 차원에서는 제일 적합한 부서가 보건복지부와 여성가족부죠. 미국에는 소수자(minority)를 담당하는 청(廳)급의 부서가 있어요. 영국에서도 ‘외로움 장관’이 있죠. 겸임제로 국민들의 외로움을 담당해요. 아랍에미리트에는 ‘행복부 장관’이 있어요. 우리나라도 이런 정책이 필요하다고 봐요.”

―센터에서 우선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요?

“우리 같은 국가 센터에서는 그분들을 돕기 위한 임상프로그램을 진행해야죠. 영어로 하면 스페셜 클리닉이라고 하는데, 사회적 약자를 위한 클리닉의 상시 운영을 제 마음속에 늘 갖고 있습니다. 하고 싶어요. 일종의 인권 클리닉이에요.”

―센터장님이 외로움 장관이나 행복부 장관처럼 직함을 지을 수 있다면 뭘로 하시겠어요?

“저는 행복부요.”(웃음)

―국민이 행복하기 위해 필요한 게 무얼까요?

“감수성이 커져야겠죠. 인권감수성, 사람의 가치에 대한 눈을 뜨는 것이 제일 우선이라고 봐요.”

―센터장님이 감수성을 키우는 비결이 있다면요?

“영화를 자주 보죠.”

―최근에 어떤 영화 보셨어요? 혹은 2019년 올해의 영화는?

“<82년생 김지영>”

―궁금해요. 우셨어요? 여성들 사이에서 ‘오열관’이라고 하는데요.(웃음)

“아니요. 영화 보고 나서 내가 아직 멀었구나라고 느꼈어요. 내가 그동안 남성으로서 누려왔던 것들…. 사실 제가 밖에서는 진보인 척하지만 집에서는 되게 보수적이거든요.”

―어떤 걸 보수적이라고 생각하시는 걸까요?

“내가 결정하면 가족들이 다 같이 한다는 그런 것들. 어떤 날 뭘 하자라든지. 애들 문제도 엄마한테 맡겨버리는….”

―사모님도 일하시는데요?

“네. 의삽니다. 같은 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졸업한 친구이자 부인이죠. 그런데 그 사람의 역량을 키우도록 도와주지 못했죠. 지금도 집사람… 아니 집사람이라는 용어 자체가 틀렸죠.(웃음) 요즘 와이프에게 공부를 당하고 있죠. 영화를 같이 봤는데 와이프는 계속 울더라고요. 어떤 면에서 여성들만큼 느끼지 못하는 제 자신에 대해 되게 속상했어요. 이게 한계구나. 여성·남성에 대한 문제에 있어서 아직 나한테는 숙제로 많이 남아 있구나 깨닫는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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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정신세계를 보고 싶었다

“보수적인 집안 분위기에서 자랐다”는 이영문은 친가가 경북 고령이다. 집안의 종손으로 1961년에 서울 영등포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관절염이 있었다. 중2 때 아침에 일어났는데 사지가 안 움직였다. 유사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나중에 의학 공부를 해보니까 청소년기에 관절염은 백혈병과 증상이 비슷했다. 1년을 휴학하는 동안 책 읽기에 취미를 붙였다. 고등학교 문예반에 들어가서 시를 썼다. 삶의 행로를 정할 소설도 만났다. 이영건의 <회전목마>. 인간의 원죄를 다룬 이 작품에는 정신장애인들이 등장한다.

―소설의 어떤 지점에 사로잡혔을까요?

“거기에 정신질환이 천형인 것처럼 나와요. 근친혼으로 자녀가 태어났는데 정신질환에 걸리죠. 어머니도 질투망상이란 정신분열증에 걸리고. ‘천형’, 하늘의 벌이라는 개념을 보면서 기이하다고 생각을 했었어요. 자연스럽게 정신과가 있는 걸 알게 됐죠.”

―문학에 영향을 받으셨는데 소설가나 시인이 아니라 의사를 꿈꿨어요.

“의사라는 직업보다 인간의 정신세계를 본다는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이과였으니까 거꾸로 정신의학을 공부하려면 의과대학을 가야 한다, 이렇게 된 거죠.”

―관절염은 어떻게 나으셨어요?

“그게 참 이상한 경험인데…. 한의사분이 계셨어요.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산골에 갔어요. 경북 영주에서 한 몇십리 갔더니 쓰러져가는 초가집이 하나 있더라고요. 거기에 웬 폐인 같은 분이 계시는 거예요. 머리를 산발을 하고, 수염도 지저분하시고, 옆에 소주병 하나 있고, 하지를 못 쓰는 하지 장애인이 앉아 계셔요. 어머니하고 둘이 사시는 무면허 한의사였어요.”

―무면허인데 용하다고 소문이 난….

“네. 제가 아픈 직후라 몸무게가 20㎏ 정도 됐을 때거든요. 선생님이 가래침 턱턱 뱉으시면서 진맥 한번 해보자고. 그분이 제가 아픈 증상을 정확히 짚어주시는 거예요. 뭐라도 해달라 하니까 그 양반이 소주로 입을 헹군 다음에, 손을 벌벌 떨면서 침을 손바닥 관절이랑 발바닥 관절에 툭툭 놓는데 신기하게 통증이 없어지더라고요. 그날 밤부터 열이 떨어졌죠. 일년을 다니고 어린 시절 6년 이상을 괴롭혔는데 다 나았어요. 다음 연도에 찾아갔더니 선생님이 이미 돌아가셨대요.”

―아! 이 얘기도 너무 문학적이에요.

“나중에 커서 저에 대한 정신분석을 받을 때 선생님이 ‘그때 어떤 치료자의 이상을 자네가 본 것 같다’고 하셨죠. 의사로서의 책임감이나 전문성. 그리고 껍데기로 사람을 판단하면 안 되겠다는 것이죠.”

의사가 가운을 입지 않고 환자를 만나는 치료공동체를 지향해온 이영문 국립정신건강센터장은 “십몇년만에 가운을 입는다”며 웃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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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질환은 완치가 아니라 관리

이영문이 의대에 입학한 1981년만 해도 정신의학과에 대한 인식이 척박했다. “의사 집안이나 부잣집에서 자식이 정신과를 지망하면 반대가 심했다.” 다행히 내무부 공무원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미래 학문’이라며 아들의 선택을 지지했다. 그는 1992년에 전문의를 따고 아주대학병원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30년 전에는 정신과에 가는 걸 사람들이 더 꺼렸겠어요.

“그렇죠. 그때도 선배님들은 10년 전보다는 편견이 많이 줄었다고 하셨어요.(웃음) 지금은 30년 전보다 정신과에 대한 편견이 굉장히 나아졌죠. 일반적인 정신질환에 대한 관용이 커졌다면, 심각한 정신증에 대한 혐오적인 요소는 더 늘었죠.”

―정신질환에 대해 가장 큰 오해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정신질환은 영원하다는 것이죠. 한번 정신병은 영원한 정신병이라는 것, 아주 대표적인 편견입니다. 정신질환은 개인의 특성(trait)이 아니라 상태(state)의 개념이거든요. 상태는 언제든지 바뀝니다. 우호적인 환경이 만들어지고 병 자체에서 오는 증상들을 잘 조절할 수 있으면 상태는 바뀌죠. 질병이 없는 상태가 계속 유지되면 잘 살 수 있죠.”

―정신질환은 잘 낫지 않는다, ‘완치율’이 낮다고 알려졌잖아요.

“모든 의학에서는 완치(cure)가 있고 관리(care)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질병은 관리가 가능한 것이지, 완치는 몇개 되지 않습니다. 맹장염은 수술하면 완치가 가능합니다. 심장병은 약을 먹으며 지속적으로 관리해줘야 하고요. 정신질환에 완치를 기대하는 것은 잘못된 개념이죠. 심각한 정신질환도 관리가 가능해요.”

―약의 부작용이 없나요?

“네. 지금은 아닌데도 편견이 남아 있어요. 철학 이야기를 잠깐 하자면, 서양철학은 이원론이죠. 이성과 비이성의 대립이라면, 동양은 일원론이란 말이에요. 정신이 무너지면 전체가 무너진다고 보죠. 나의 정신을 약물이 컨트롤한다는 것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예요. 정신을 약물이 완전히 컨트롤하는 게 아니고, 약물을 먹으면서 관리를 하겠다는 의지에 따른 선택이에요. 신체 관리를 위해서 밥을 먹고 운동을 하죠. 정신질환도 마찬가지죠. 밥에 해당되는 약이 있고, 운동에 해당되는 행동·감정 키우는 게 있고요. 양쪽이 똑같습니다.”

―근데도 (신체질환에 비해)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이 심화된 이유가 뭘까요?

“세상에 대한 두려움일 겁니다. 잘 알지 못하는 것에 두려움이 더해지면 혐오가 돼요. 인간의 정신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잖아요. 어떤 사건이 터져요. 그러면 두려움이 합쳐져서 혐오로 발전해버리죠. 동성애, 이주노동자 문제 다 같은 맥락입니다. 개별적인 사건을 보고 일반화해버리죠.”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과 2019년 진주시 아파트 방화사건은 공통점이 있다. 두 사건 모두 가해자는 조현병 환자였고 피해자는 여성이거나 주로 여성들이었다. 강남역 살인사건에 대해 여성들은 여성혐오라며 크게 반발했으나 당시 범죄학, 법 전문가 등은 ‘묻지마 살인’으로 최종 발표했다. 이는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의 맥락을 지우고 동시에 정신질환자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어쩌면 두 사건이 조현병에 대한 혐오가 커진 기폭제가 됐죠.

“묻지마 범죄라는 명명 자체가 잘못된 겁니다. 정확히는 “정신질환의 급성기 증상에 의한 행동”의 결과가 범죄입니다. ‘묻지마’라는 단어가 행위 주체의 무개념이나 생각 없는 충동적인 행동을 내포하죠. 묻지마 투자, 묻지마 여행 등등이 그렇죠. 하나의 황색언론입니다. 혐오를 입힐 만한 대상자가 걸리면 그걸로 쓰죠. 프레임을 만들어놓고 기사를 찍어내는 식이에요. 수능 끝나고 청소년이 죽으면 무조건 ‘성적 비관 자살’이라고 쓰듯이요. 진주 방화범 사건은 희생자가 더 많았죠. 범죄자가 더 부각될 수밖에 없었던 거 같고, 여성혐오가 동기가 됐던 것, 둘 다 이슈는 같다고 봅니다. 강남역 사건은 여성혐오가 맞죠.”

―한국여성의전화 2017년 통계를 보니까 한국에서 남편과 애인 등 친밀한 관계에 의해 살해된 여성이 최소 85명이었는데, 조현병에 의해 살해된 여성은 그보다 훨씬 적겠죠. 근데 조현병처럼 ‘남편’을 위험한 집단으로 낙인찍지는 않거든요.

“네. 2015년까지 신문에 언급된 기사만 봐도 정신분열증에 의해 살해된 여성보다 데이트폭력, 가정폭력으로 살해된 여성의 수가 더 많았죠. 혐오를 혐오로 덮는 사회예요. 그 혐오에 정신장애인을 동원시키죠. 이것의 가장 큰 책임은 법을 다루는 검찰과 언론이죠.”

“지나치게 성실하지 마라, 네가 마음대로 해도 아무도 다치지 않는다”

―사회가 경쟁이 심해지면서 정신질환자도 느는 거 같은데, 스트레스가 영향이 있나요?

“스트레스가 원인이라기보다는 더 악화될 수 있는 매개가 될 수 있습니다. 원래가 ‘발현’이라고 하는 게 맞지요. 우리가 잠재적 요소를 다 갖고 있어요. 암 인자도 다 갖고 있다가 환경에 의해 발현이 되는 것처럼. 마찬가지로 정신질환도 발현되는 거거든요. 사회적 환경이 건강하고 스트레스가 많이 발생하지 않는 조건이라면, 그리고 스트레스가 발생하더라도 합리적 방면으로 수습이 되는 사회라면 발현이 덜 되니까 더 줄겠죠. 정신질환이 우리나라만의 현상이 아니고 다른 나라도 계속 새로운 정신질환이 나와요. 특히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가 전세계적으로 증가합니다.”

―센터장님은 스트레스 관리를 어떻게 하세요?

“스트레스를 잘 쌓아두지 않죠. 역으로 이야기하면 지나친 책임감, 성실감은 우리의 영혼을 갉아먹어요. 저는 지나치게 성실하지 마라, 자기본위적으로 살라고 말해요. 못될 만치 자기만 생각해라. 개인과 조직의 갈등이 있다면 개인의 욕망을 따라가라, 너 없이도 조직은 굴러간다. 네가 마음대로 해도 아무도 다치지 않는다, 그건 너의 걱정일 뿐이다. 이런 생각들을 하죠.”

―굉장히 좋은 팁인데, 어렵잖아요.

“이게 잘 안돼요. 훈련이 잘되어 있어야 해요.”

―어떻게 훈련하셨어요?

“제가 정신분석을 받기 전에는 굉장히 굿보이 신드롬에 시달렸어요. 어려서부터 그렇게 컸고, 사람들에게 다 잘해줘야 하고. 그러다가 스물일곱에 분석을 받게 되면서 내가 불필요하게 매달린 걸 알게 됐죠. 아직도 체질화는 안 됐는데, 많이 달라졌죠.”

―정신과 의사는 환자를 통해 여과 없이 사회의 병폐를 보니까 비관적이 될 거 같아요.

“환자들이 하는 이야기가 아무리 절망스럽더라도 우리는 그걸 해독해서 돌려줘야 이 사람이 순해지거든요. 분노를 받아줘야 하는 직업인 거죠.”

―말을 순화시켜 돌려준다, 다른 해석을 하나 내어주는 사람이네요.

“그렇죠. 청소년들이 ‘헬조선’이라고 이야기를 해도, 꼰대 정신으로 ‘지금이 얼마나 좋은 세상인데’ 이러면 안 되고, 네가 느끼는 헬조선의 모습이 맞다, 맞지만 대한민국은 다양한 모습을 갖고 있다고 해야죠. 어떤 사회든 고유의 회복력이 있고, 한국은 회복력이 매우 강한 나라예요. 희망이 있습니까, 하면 희망은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있지만 희망이 있다는 쪽을 나는 택하겠어요.”

이영문은 켄 로치 감독의 영화를 좋아한다. 좋은 영화가 세상을 바꾸듯이 정신건강의 가치가 세상을 바꾸고, 대한민국을 바꾼다고 믿는다. 그가 말하는 정신건강의 가치란 “사람이 사람을 생각하는 힘”이다. 소통, 존중, 신뢰, 사랑이 녹아 있는 개념으로서의 정신건강을 사회적 자본으로 보는 이유다. 그의 이메일 아이디는 ‘humanishope’(사람만이 희망이다), 그는 지치지 않고 희망을 말하기로 유명한데 그건 유토피아를 꿈꿔서가 아니라 세속의 아픔을 직시하기 때문이다. 시인의 말대로 “아픔은 살아 있음의 징조이며 살아야겠음의 경보”이기에, 살고자 하는 사람을 살게 하는 자신의 자리를 귀히 여기고, 국립정신건강센터가 국민들의 정신건강을 위한 중심이 되고자 노력한다.

녹취 이유진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은유: 글 쓰는 사람. 글쓰기 수업도 한다. <글쓰기의 최전선> <다가오는 말들>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등을 펴냈다. 2005년부터 여러 매체에 칼럼을 쓰고 인터뷰를 해왔다. 성폭력 피해 여성, 국가폭력 피해자, 성소수자, 산재 노동자까지 다양한 이들을 만나고 기록했다. 사람을 살게 하는 말을 모으고 나누는 인터뷰를 하고 싶다. ‘은유의 연결’은 4주에 1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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