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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12.14 18:23 수정 : 2007.12.14 19:43

박경철/안동신세계연합병원장

삶의창

어느날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건너편에 작은 1톤 트럭을 운전하시는 분이 내쪽을 향해 뭐라고 손짓을 하는 것이 보였다. 얼핏 보기에 익숙한 듯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를 향해 흔든 손짓이 아니라 내 뒤에 오는 다른 사람에게 한 손짓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로 말미암아 3년 전의 기억으로 잠시 되돌아갔다.

병원에서 임꺽정 아저씨라 불리던 그는 노모를 병원에 모시고 다니던 보호자였다. 할머니는 연세가 일흔 정도 되셨는데 상당히 진행된 골다공증으로 허리가 정말 할미꽃처럼 휘어져 계셨다. 골다공증은 이미 치료가 불가능한 수준이었고, 그때는 허리에 통증으로 물리치료를 받느라 병원을 다니시던 중이었다. 할머니에게는 세상에 드문 아들이 하나 있었고, 아들은 하루도 빼지 않고 몇 달 동안 할머니를 업고 병원에 왔다. 그 아들이 임꺽정 아저씨였다. 그는 사실 보기에 좋은 인상은 아니었다. 덩치가 크고 우락부락하게 생긴건 둘째 치고라도, 얼굴에 난 상처나 팔뚝에 새긴 문신 등은 그의 과거 삶이 꽤나 거칠었다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었다. 하지만 외모에서 풍기는 분위기와는 달리 그는 정중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처음 그를 경계하던 직원들도 나중에는 임꺽정 아저씨라 부르며 꽤 친근하게 그를 대했다.

구시장에서 쌀이나 무거운 농기계를 구입한 분들이 요청하면 그것을 싣고 집까지 배달해 주는 일종의 단거리 용달업이 그의 직업이었다. 하지만 그는 한번도 노모의 병원 치료를 빼먹지 않았다. 늘 할머니를 모시고 와서 물리치료실에 뉘어 드리고는 치료가 끝날 즈음 다시 병원에 와서 모시고 가곤 했다. 그러다가 혹시 장날이라도 돼서 할머니를 제때 모시러 오지 못하면, 직원들에게 몇 번이나 고개를 숙이면서 부탁했다. “미안하지만, 혹시 내가 제시간에 못오면 우리 어머니 여기서 좀 누워서 기다리게 해주십시오. 정말 미안합니다.” 그런 그의 정중함과 지극한 효성에 어린 직원들도 깊이 감동한 인상이었다.

심지어는 내게 자신도 물리치료를 받고 싶다고 처방전을 끊어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었다. 내가 어디가 아프냐고 물었더니 “어머니가 이번에는 증세가 좀 심해서 치료를 좀더 오래 받았으면 하는데, 제 앞으로 처방전을 끊어서 물리치료를 두 배로 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라고 말했다. 내가 그럴 필요가 없으며, 물리치료는 적정 시간을 넘으면 노인들께는 해가 된다고 말씀을 드리자, 또 고개를 푹 숙이며 “그것도 모르고 무식한 소리를 해서 죄송합니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어느날 그가 내게 이런 사연을 들려줬다. 그는 어린시절부터 폭력조직에 들어가서 교도소를 세 번이나 들락거렸다고 했다. 하지만 정신을 차렸을 때는 노모가 깊은 병에 들어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지금 노모에게 고개를 들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이제라도 최선을 다해 모시고 싶다고 했다. 그런 그의 마음이 고마웠다. ‘돌아온 탕자’는 세상에 그 누구보다 아름다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날부터 두 모자가 갑자기 병원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혹시라도 노모가 돌아가신 줄 알고 이웃을 통해 물어 보았더니, 놀라운 대답이 들려 왔다. 그가 농기구를 싣고 인근 마을로 배달을 나갔다가, 국도에서 중앙선을 넘은 트럭과 충돌해서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어디선가 사이렌 소리가 아득하게 들리는 듯했다. 뒤늦게 돌아온 아들과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늙은 어머니의 얼굴이 겹쳐지며 긴 한숨이 저절로 흘러 나왔다. 임꺽정 아저씨는 자신이 그렇게 씻고 싶어했던 불효의 한을 다 씻기도 전에, 세상에서 가장 크고 깊은, 정말로 해서는 안 될 불효를 저지르고 말았던 것이다.

박경철/안동신세계연합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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