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맘 먹고 구입한 신간을 맛있게 읽고 있는데 작은아이가 불쑥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는 읽던 책을 허겁지겁 책상 밑으로 감추었다. 엄마, 뭐 하고 있었어?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내 모습에 아이가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나는 몇 번 눈을 깜빡이다가 감췄던 책을 도로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으응, 책 읽고 있었어. 어릴 때부터 나는 책읽기를 좋아하는 아이였다. 부모님은 그런 나를 ‘어디에 데려가도 책만 있으면 조용해지는 아이’라고 칭찬하셨다. 그런 부모님의 태도는 내가 중학생이 된 순간부터 돌변했다. 딸이 책을 손에 잡을 때마다, 쓸데없이 소설책 같은 거 읽지 말고 그 시간에 교과서나 한 번 더 보라는 말을 매섭게 날리셨다. 그러나 당신들은 늘 ‘쓸데없는(=교과서가 아닌) 책’을 손에 들고 계셨고, 언제나 부모의 말보다 부모의 행동을 따라가게 되는 ‘자식의 법칙’에 따라 나는 몰래몰래 열심히 책을 보았다. 나의 이런 행각은 어느 날 소리 없이 방문을 열고 들어온 아버지에게 걸리고 말았다. 그리고 나는, 혹여 구겨질까 책장도 벌벌 떨면서 넘길 정도로 아꼈던 <빨강머리 앤> 전집과 파름문고 시리즈가 쓰레기통에 처박히는 광경을 두 눈 뜨고 지켜보아야 했다. 한 푼 한 푼 용돈을 모아 샀던 책들을 뺏기면서 느꼈던 억울함과 분노를, 나는 지금도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다. 물론 그 이후로 나는 ‘부모가 금지하는 것은 무엇이든 너무나 사랑하게 되는’ 아이들 특유의 법칙에 따라 이전보다 백배는 더 책을 탐하는 아이가 되어 학교 성적이 급전직하하는 비운을 맛보았다. 이때 형성된 ‘독서에 대한 죄책감’은 작가 소리를 듣게 된 후에도 없어지지 않았다. 책을 읽고 쓰는 것이 나의 ‘일’이 되었는데도, 혼자 방에서 책을 읽다가 누가 들어오면 후다닥 감추는 일이 종종 생겼던 것이다. 이처럼 어린 시절에 부모와 나누었던 대화, 습속, 분위기가 한 사람의 내면에 평생 남게 되는 현상을 소설가 로맹 가리는 ‘새벽의 약속’이라 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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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아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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