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9.03.25 16:32 수정 : 2019.03.25 19:19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1990년대 초반 독일. 제조업의 쇠퇴로 산업 공동화에 대한 우려가 팽배한 상황이었다. 벤츠의 고향으로 유명한 슈투트가르트는 실업률이 9%에 이르면서 고용위기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었다. 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한 슈투트가르트 금속노조와 사측인 다임러는 임금인상 요구를 자제하고, 신제품 개발과 투자 확대를 위해 노력하기로 극적으로 합의했다. 노사 간 자발적 합의와 노력의 결과, 2000년 슈투트가르트의 경제성장률은 4%를 넘어서고, 독일 내에서 실업률이 가장 낮은 지역으로 탈바꿈했다.

노사가 자발적으로 협력하여 위기를 극복한 사례는 국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국내 자동차 부품업체 ㄱ사. 1999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 당시 회사가 어려움을 겪자 ㄱ사 노조는 자발적으로 임금을 동결하고 상여금을 반납했다. 덕분에 ㄱ사는 인원감축 없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고, 이에 사측은 특별성과급과 임금 인상률 상향 조정으로 보답했다. 이러한 노사상생의 경험을 바탕으로 ㄱ사는 최근 3년간 매출액이 21.4%, 영업이익은 27.3% 늘어나는 등 우수한 경영성과를 달성하였다.

지금 우리 경제는 투자 위축, 수출 감소 등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특히 고용규모가 큰 주력 산업의 부진으로 일부 지역 경제가 침체되고 일자리 여건도 힘든 상황이다. 지난 1월31일, 우리는 광주에서 새로운 변화의 시작을 목격했다. ‘광주형 일자리’ 모델은 노사 양자 간 양보와 타협을 넘어서서 시민사회와 지자체가 함께 참여했다는 점에서 앞선 사례들보다 한 단계 진일보한 모델이다. 노동계는 상대적인 저임금을 수용하면서 근로조건을 양보했고, 현대자동차는 23년 만에 국내 완성차 공장 투자를 결정했다. 광주의 시민사회 역시 가만히 있지 않았다. 범시민 결의대회와 서명을 통해 협상에 힘을 보탰다. 그리고 지난 4년7개월간 협상과 중재를 주도하고 행정?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은 광주시의 역할도 결정적이었다. 광주의 노동계, 기업, 시민사회와 지자체가 합심하여 대의를 위해 서로 양보하고 타협한 결과, 앞으로 광주에는 1만2천명의 직간접적 일자리가 생겨날 것으로 기대된다. ‘광주형 일자리’는 노사와 지역이 어떻게 상생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서, 이제 우리 사회가 혁신적 포용국가로 발돋움할 만큼 충분히 성숙해졌다고 생각한다.

상생형 지역일자리는 지역이 육성해온 산업·업종과 여건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발전될 수 있을 것이다. 광주형 일자리는 그 무엇보다 노사 간의 타협이 중요했다. 반면, 신재생 분야에서는 주민의 수용성이 좀더 강조될 수 있고, 석유화학 업종에서는 대?중소기업 간 상생협력이 지역일자리 성사의 촉매제가 될 수 있다. 중간에서 양보와 타협을 이끌어내고, 경제성장의 이익이 모두에게 공유될 수 있도록 하는 지자체의 노력은 이 모든 것을 성사시키는 버팀목이다.

지난 2월21일 정부는 광주의 노사민정이 보여준 가능성을 확산시키고 제도화하기 위해 상생형 지역일자리 모델 확산 방안을 확정하였다. 이 계획에 따라 우선 국가균형발전특별법 개정을 통해 상생형 지역일자리 지원의 법적 근거를 마련할 것이다. 또한 상생형 지역일자리 사업에 대해 세제, 입지, 투자자금, 생산성 제고 등 폭넓은 인센티브도 제공할 것이다. 그리고 지역에서 발굴된 상생 모델의 구체적인 실현을 지원하기 위해 전담 조직을 설치하고, 지역순회 설명회도 개최하여 지역별로 지자체, 기업, 노동계 등에 맞춤형 컨설팅을 제공하고 투자 애로를 해소해 나갈 것이다.

중국 송나라의 정치가였던 사마광이 어린 시절, 동네 어린아이가 물독에 빠져 죽을 위기에 처하자, 꼬마 사마광이 돌멩이를 가져와 물독을 깨고 아이를 구해냈다. 염일방일(拈一放一), 즉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놓아야 한다”는 고사는 여기에서 유래했다. 상생형 지역일자리는 근로자, 기업 등 참여 주체가 단기적으로 이익을 양보하고 위험을 감수함으로써 중장기적으로 더 큰 성과를 만들어내는 경제혁신 모델이다. 지역의 노사민정이 염일방일의 자세로 마음을 열고 서로 양보할 때 상생형 지역일자리가 여러 지역으로 확산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시론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