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6.03 16:54
수정 : 2019.06.04 14:00
|
지난달 13일 서울 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실업급여 관련 서류를 작성하는 시민의 모습. 연합뉴스
|
정부는 이달에 한국형 실업부조 도입을 위한 입법을 예고할 예정이다. 여야 의원들이 각각 발의한 안까지 포함하면 4개의 법률안이 국회에 제출된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 한국형 실업부조 도입의 필요성이 제안된 이래 10년 넘게 사회적인 논의를 거치면서 그 공감대가 넓어진 것이다.
한국형 실업부조는 고용안전망의 사각지대를 줄이는 데 기여할 것이다. 실업자를 보호하는 일차적 제도인 고용보험은 1997년 말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 당시 경제와 노동시장을 안정시키는 데 역할이 컸지만, 사각지대가 넓은 문제를 여전히 안고 있다. 자영업자, 노동시장에 처음 진입하는 청년이나 경력이 단절된 여성은 고용보험의 적용에서 제외되며, 적용대상이더라도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비공식 노동자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실업급여를 받는 비율은 실업자 10명 가운데 4명 안팎에 그친다. 특히 고용보험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저소득층은 실업 위험이 높고 실업기간 동안 생활의 어려움도 크다. 한국형 실업부조는 실업의 부정적인 위험이 큰 구직자를 우선하여 보호하는 제도다.
한국형 실업부조는 취약한 구직자에게 단순히 소득을 지원하는 제도가 아니다. 적극적인 구직활동을 조건으로 소득을 지원한다. 또한 구직자의 숙련과 경력에 적합한 일자리 탐색을 돕고, 취업취약성이 높은 구직자에게는 경력 개발을 위해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에 참여하도록 의무를 부과할 수 있다. 전담 상담원이 사례 관리를 통해 필요한 취업지원서비스를 제공하고, 불성실하게 참여하는 구직자에게는 수당 지급을 정지하거나 중단하는 제재를 할 것이다.
현재까지 논의된 안에 따르면, 한국형 실업부조는 중위소득 50% 이하 저소득층과 120% 이하 청년층 20만~50만명을 대상으로 6개월간 월 약 50만원 정도의 급여와 적극적 취업지원서비스를 동시에 제공하는 형태로 기획되고 있다. 취업취약계층에게는 한국형 실업부조보다 일자리 제공이 더 필요할 것이라는 의견이 있을 수 있다. 취업이 빈곤을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길이기 때문에, 특히 고용이 부진한 시기엔 재정을 통해서 일자리를 제공할 필요성이 크다.
그러나 단기적인 일자리 제공만으로 취약계층이 실업과 빈곤의 함정을 벗어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우리나라 저숙련 저소득층의 고용률이 다른 나라에 비해 높은데 빈곤율도 높은 예외적인 현상은 일을 해도 빈곤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실업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저소득층은 실업기간 동안 소득을 유지할 수단이 없기 때문에 어떤 일자리든 빠르게 취업하려고 한다. 그러나 신속하게 취업하더라도 다시 실직하여 빈곤 상태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적절한 일자리 탐색을 지원하는 고용안전망과 고용서비스의 부재가 반복적인 실업과 반복적인 빈곤을 낳는 제도적인 이유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일자리 정책과 한국형 실업부조 중 어느 하나를 배타적으로 선택할 수는 없다. 정책 간 균형과 연계가 필요하다.
근로장려금을 대폭 확대했는데 한국형 실업부조까지 도입할 필요가 있느냐는 의문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근로장려금은 일하는 동안, 한국형 실업부조는 구직활동을 하는 동안 지원하기 때문에 중복 지원은 아니다. 또한 한국형 실업부조의 성과가 높을수록, 즉 취업했을 때 근로기간이 늘고 근로소득이 높아질수록 근로장려금의 지급액을 줄이고 탈수급률도 늘릴 것이기 때문에 상호보완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더구나 근로장려금은 경기순환에 대응한 안정화 역할이 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불황기에 취업하기 어려우면 근로장려금 수급자가 줄 것이기 때문이다. 주요 선진국에서 자동안정화 장치 역할을 하는 고용안전망과 근로장려금을 병행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형 실업부조 도입의 기대효과는 실업기간 동안 소득 지원을 통해 빈곤율을 낮추는 데 그치지 않는다. 적절한 일자리 매칭과 경력 개발을 통해 노동시장의 불안정성을 낮추고 근로빈곤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나아가 일자리정책을 내실화하고 발전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한국형 실업부조의 입법과 고용서비스 인프라의 확충을 통해 취업취약계층에게 희망의 디딤돌을 제공하길 기대한다.
이병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