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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6.24 17:35 수정 : 2019.06.24 21:30

유현정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연구위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출범 이후 격화된 미-중 간 패권경쟁이 단순한 무역갈등을 넘어 기술·군사 등 모든 영역으로 확전되고 있다. 특히 첨단기술 경쟁이 부각되면서 중국의 통신장비업체인 화웨이에 대한 미국의 제재가 국제적인 논란거리로 등장했다.

한국에서도 화웨이 문제는 ‘뜨거운 감자’처럼 되고 있다. 특히 지난 5일 주한미국대사관 및 한국인터넷기업협회가 공동 주최한 공개 콘퍼런스에서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가 “5G 이동통신은 보안 측면에서 신뢰할 수 있는 공급자를 선택하는 게 중요하다”고 발언하면서 화웨이 사태를 ‘제2의 사드’ 사태 가능성에 비유하는 언론이나 전문가가 늘고 있다. 사드 배치 논란 때 미-중의 요구 사이에서 곤혹스러웠던 한국의 처지가 화웨이 사태로 재연될 수 있다는 것이다.

5G 기술 분야는 ‘미래’ 세계 패권의 결정적 요소라는 점에서 미-중 경쟁에서 특별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미-중 경쟁 격화로 한국이 마주할 외교적 딜레마만 강조하는 것은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미-중 패권경쟁은 양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우리에게 분명히 위험요인이지만 동시에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예컨대 미-중 두 나라의 대한반도 영향력 경쟁은 북-미 관계 및 한-중 관계 개선을 촉진하는 측면이 있다.

화웨이 문제도 사드 문제와는 성격이 전혀 다르며 우리의 전략적 선택지도 훨씬 넓다. 첫째, 사드 배치는 한-미, 한-중 양자 간 현안이었지만 화웨이 이슈는 세계 모든 국가가 관련된 다자간 이슈다. 미국의 주요 동맹국들은 화웨이 제재에 대한 최종결정을 미루고 있고, 심지어 영국조차도 핵심부품을 제외하곤 화웨이사 장비 사용을 허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영국을 비롯한 다수의 국가가 화웨이 제재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는다면, 미국이 특정 국가에 개별적인 불이익을 주기는 어려울 것이다. 예컨대 2015년 미국의 반대에도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영국이 참여하고 독일과 프랑스 등도 뒤를 따랐지만 미국은 제재를 하지 않았다. 중국 역시 개별 국가의 화웨이 제재 동참 수위에 따라 대응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세력 싸움 국면에서 특정 국가만을 겨냥해 차별적인 보복 조처를 취하기는 쉽지 않다.

둘째, 사드 문제가 배치 허용 혹은 불허의 양자택일 사안이었다면 화웨이 문제는 화웨이 장비 사용의 완전 배제부터 일부 허용까지 수요와 공급 양 측면에서 다양한 선택지가 있다. 현재까지 우리 정부 입장은 5G 보안 문제에 대한 검증을 지속하면서 민간부문은 자율에 맡기는 쪽으로 보인다. 사실 미-중 간 패권경쟁이 군사·기술 등 모든 영역으로 확전됨에 따라 앞으로 양국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문제가 점증하게 될 터인데, 그때마다 정부가 나서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번 화웨이 문제에 대한 대응을 통해 기술과 표준 경쟁에서는 민간 영역이 철저히 경제적 이익에 바탕을 두고 판단한다는 원칙과 선례를 만드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셋째, 사드는 철저하게 군사적 이슈였다면 화웨이 문제는 일차적으로 경제 및 기술적 사안이다. 우리 쪽에서 토지 공여나 환경평가를 해야 하는 사드 문제와 달리 통신장비의 선택은 훨씬 주관적이며 민간분야의 영역에 가깝다. 또한 일차적으로 미국과 중국이 직접적인 분쟁의 당사자다.

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언론과 전문가들이 사드와는 성격이 전혀 다른 화웨이 이슈에 대해 “제2의 사드” 사태라는 프레임을 씌우는 것은 타당하지 않고 국익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중국은 한국 언론의 보도에 착안해 제2의 사드 사태 가능성을 우리 쪽에 경고할 수 있다. 미국도 국내에서 이슈가 될수록 한국을 화웨이의 ‘약한 고리’로 인식하며 ‘줄서기’를 강요하리라고 쉽게 예측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 정부는 물론 언론, 산업, 학계에서도 5G 보안 문제를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검증하고 이를 토대로 국가적 합의를 도출해내는 차분한 대응이 필요하다. 화웨이 이슈에 “제2의 사드” 프레임을 대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것일 뿐만 아니라 한국의 입지를 스스로 축소하는 ‘자충수’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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