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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8.12 18:17 수정 : 2019.08.12 23:02

김정훈
재정정책연구원 원장

경기 하방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 미-중 무역분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설상가상으로 일본이 ‘제 살 깎기’ 무역전쟁을 시작했다. 한국으로서는 무역분쟁이 여러 측면에서 전화위복이 될 수 있지만, 단기적으로는 경제의 위축이 불가피해졌다. 올해 경제성장률 2%대 달성이 어려울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다행히 최근 추가경정예산 통과로 경기부양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그 규모가 그리 크지 않다. 올해 상반기의 적극적인 재정집행으로 하반기의 재정집행 여력도 그만큼 줄었다. 향후 무역분쟁의 심각성에 따라 2차 추경을 해야 할지 모른다.

민간 부문의 수요(소비·수출·투자)가 약해지면, 정부라도 나서서 저축(세수) 대비 소비(세출)를 늘려야 한다. 전세계가 2009년 경제위기를 이러한 확장적 재정정책을 통해 극복했고, 한국은 아주 어려웠던 1998년 금융위기를 이 방식으로 극복했다. 확장적 재정정책은 곧 적자예산 편성을 의미하므로 국가부채 증가에 대한 우려가 있다. 사실 국가부채의 적정 수준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은 경제학계에서 뜨거운 논쟁거리다.

2010년 하버드대의 케네스 로고프 교수와 카먼 라인하트 교수는 국가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90%를 넘어서면 경제성장률이 가시적으로 떨어진다는 논문을 발표해 당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런데 2013년 초에 이 결과가 엑셀 작업의 오류 때문임이 밝혀졌고, 오류를 교정하고 나니 국가부채가 경제성장률에 가시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수준(한계치)이 더 이상 도출되지 않았다. 로고프·라인하트의 오류 이후에도 이 주제에 대한 연구는 계속됐다. 특히 국제통화기금(IMF),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도 다양한 관련 연구를 했는데, 그 결과는 국가부채의 한계치를 정확하게 설정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었다.

국가부채의 한계치가 명확하게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은 오이시디 주요 회원국의 재정통계를 봐도 알 수 있다. 2018년 미국, 프랑스, 영국의 국가부채가 각각 지디피의 110%, 122%, 124%였다. 일본의 국가부채는 무려 지디피의 234%다. 이 국가들의 국가부채가 지디피의 90%를 훌쩍 넘었지만, 이로 인해 성장률이 가시적으로 떨어졌다는 징후를 발견하기는 어렵다. 다만 직관적으로 국가부채 수준이 낮아져야 한다는 생각은 해볼 수 있는데, 이런 견해마저도 최근 세계적 경제학자들에 의해 부정되고 있다. 아이엠에프 수석 이코노미스트였던 올리비에 블랑샤르 교수는 2019년 초 전미경제학회 기조연설에서 국채 이자율이 장기적으로 하락하고 있으므로 미국의 재정적자 규모를 더욱 늘릴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전세계적인 현상인 국채(10년 만기) 이자율의 하락 현상은 주목할 만하다. 2000년에서 2017년까지의 국채 이자율이 미국의 경우 6%에서 2.3%로 낮아졌고, 일본의 경우 1.7%에서 0.05%로 낮아졌다. 한국 역시 6.85%에서 2.28%로 낮아졌다. 이런 국채 이자율의 장기 하락 추세로 한국의 국가채무 비중이 2000년 지디피의 17%에서 2018년 40% 가까이 증가했지만, 국채의 이자 부담은 오히려 지디피의 1.6%에서 1.2%까지 떨어졌다.

확장적 재정정책에는 장점(경기 진작)과 단점(이자 및 상환 부담)이 있다. 이 장단점은 경제 여건에 따라 변한다. 경제 상황이 안 좋으면 장점이 부각되고, 이자율이 높거나 국가부채가 지나치게 많으면 (일본처럼) 단점이 부각된다. 따라서 무역분쟁으로 경기가 위축되면, 정부는 확장적 재정정책을 통해 경제위축을 최소화시키면서 경제 구조조정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 일본도 이런 정책을 펼쳐야 하겠지만, 일본의 국가부채 230%는 아무리 봐도 지나치게 높고, 설상가상으로 10월 소비세(부가가치세) 인상이 기다리고 있다. 즉 일본의 재정은 무역분쟁으로 위축된 경기를 살리기보다 더 위축시켜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한국의 풍부한 재정 여력과 일본의 소진된 재정 여력을 아베 신조가 충분히 고려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한국의 재정 상황은 일본과 다르다. 향후 무역분쟁의 장기화로 경기 하방 리스크가 좀 더 분명해질 경우, 국가채무의 절대적 수준에 대한 막연한 우려보다 국가채무의 긍정적 역할(재정의 경기 대응)을 활용하는 안목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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