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복기/공동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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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프리즘
스무밤을 자면 설날이다. 떠올리기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때다. 하지만 이번 설날은 세계 최고 수준의 갑붓집 ‘상속자’인 이재용씨에게는 마음이 편치 않은 명절이 될 듯하다. 삼성 본관은 물론 이건희 회장의 집무실까지 압수수색 당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그는 무슨 생각을 할지, 주위에서 그에게 어떤 충고를 할지 궁금하다. 법무실을 중심으로 특검 수사에 철저히 대비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거나 ‘기업 프렌들리 정부’가 출범을 앞두고 있고, 일자리 창출에 삼성의 도움이 필요하니 ‘심한 매’를 맞지 않을 수 있다는 전망도 할 것이다. 관련 자료를 숨기거나 폐기하고,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만들어 당장 눈앞의 ‘큰비’를 피해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봉책은 앙금을 낳는다. 그렇게 숨긴 허물은 조만간 또다시 불거진다. ‘책사’들은 ‘공신’으로 또다른 질곡이 될 것이다. 정직이 최선의 방책이다. 이씨에게, 세계적인 아이스크림 프렌차이즈 회사 배스킨라빈스의 상속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아이스크림 제조 과정에 담긴 문제점을 폭로하며 상속을 거부하고 환경운동가로 살고 있는 존 로빈스 같은 사람이 되기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삼성은 물론 자신을 위하는 가장 현명한 선택을 하라는 거다. 정직은 두려운 말이다. 법의 칼날이 아버지 이건희 회장에게 상처를 입히거나 ‘상속’에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어떤 수준에서건 누군가 법적·도덕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정직을 택하는 용기를 내길 바란다. 법을 어겼다면 법의 심판을 받는 게 가장 현명한 길이다. 상속 문제도 그렇다. 8000억원의 ‘통행세’는 정직한 태도가 아니다. 법대로 세금을 내고 상속을 받으면 된다. 지분이 줄어들 수 있다. 재산은 불려가는 재미가 쏠쏠하다고들 한다. 지난해 12억 달러를 기부한 힐튼호텔 체인 윌리엄 배런 힐튼 회장이 유산 상속을 “자기 재산을 형성하는 만족감을 빼앗는 일”이라고까지 말했다. 위기가 기회다. 정직이야말로 삼성이 세계 초일류 기업이 되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길이다. 나아가 이재용씨가 마음 편하게 삼성을 이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세계적인 기업의 최고경영자가 권력 핵심부나 사법기관의 눈치를 보면서 살 이유가 없다. 삼성에 대한 특검은 기실 삼성의 자업자득인 측면이 크다. 삼성이 대를 이어 기업을 경영하는 동안 세상은 많이 변했다. 삼성의 성장은 눈부셨다. 하지만 삼성은 적어도 오너십에 있어서는 세상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했다. 이씨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시대는 정경 유착에 따른 정치자금 제공과 정책적 수혜를 받던 때였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1995년 이건희 회장이 4류라고 했던 정치는 적어도 3류 이상으로 발전했다. 좀더 지켜봐야겠지만 불법과 탈법이 많이 사라지고, 음성적 돈선거의 악폐가 거의 사라진 지난번 대통령 선거가 이를 보여준다. 앞으로 정치권은 더욱 투명해질 것이다. 관료 사회도 마찬가지다. 천문학적인 비자금을 조성한 의혹을 받고 있는 삼성이야말로 2류에서 3류로 추락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삼성이 1류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구시대의 악습을 깨끗이 털고 가야 한다. ‘삼성이 하면 다르다’라는 칭찬이 천문학적 비자금 조성과 편법을 동원한 상속에 쓰일 표현은 아니지 않는가.‘신용이 천하의 고객을 모으고 정직이 만인의 마음을 잡는다’. 중국 상인들이 즐겨 쓰는 말이다. 마음에 새겼으면 한다. 윤리경영의 창시자로 정직과 땀 흘린 노력이 얻는 ‘과보’를 삶으로 보여준 일본 교세라 그룹 이나모리 가즈오 명예회장의 책 <카르마 경영>을 읽으며 용기를 내라고 말하고 싶다. 권복기/공동체팀장 bokk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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