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2.12 19:21
수정 : 2008.02.12 19:21
|
강태호/남북관계 전문기자
|
한겨레프리즘
자고 일어나니 숭례문이 잿더미가 됐다. 또다른 우울한 얘길 하는 걸 용서하기 바란다. 북핵 문제다. 마침 8일 북한 <로동신문>이 미국에 경고를 했다. 강경일변도 정책으로 나오면 “지금까지 대화를 통해 이룩된 모든 것이 순간에 하늘로 날아갈 수 있다.”
꼭 1년 전 오늘 6자 회담은 2·13 합의를 만들어냈다. 그건 한반도 비핵화를 말 대 말에서 행동 대 행동으로 바꾼 이정표였다. 그리하여 2006년 10월의 핵실험으로 전쟁위기로 가던 핵시계는 평화로 방향을 바꿨다. 2·13 합의는 10월3일 2단계 불능화 합의와 10월4일 남북 정상선언의 출발점이었다. 남북관계와 북핵은 서로 이끌어주는 선순환 관계를 보였다. 새해 최고의 화제작으로 400만 관객 돌파를 앞둔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처럼 남북관계도 ‘최고의 순간’이었다. 그러나 북핵과 남북관계는 다시 악순환이 우려된다. 대선 이후 불과 2개월. 말 그대로 급전직하다.
미국 내에선 대북 접근법이 실패했으며, 북한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5일 마이클 매코널 국가정보국장은 상원 정보위에서 “북한이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과 핵확산 활동의 두 가지 문제에 계속 개입하고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적절히 지적하고 있듯이 1년 전 조지프 디트라니 국가정보국 북한담당관의 평가와 크게 대비되는 것이다. 디트라니는 정보위에서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의 정보평가를 ‘높은 신뢰’에서 ‘중간 수준 신뢰’로 낮춰 조정했다. 무엇보다 매코널 국장 자신이 1년 전엔 “미국은 원하는 만큼 북한 내부에 대한 정보수집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고 시인했다. 게다가 매코널도 지적했지만 미국은 북한과 시리아의 핵 협력설을 추궁하겠다는 자세다.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차관보는 6일 이에 대해 “우리가 알고자 하는 것은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다”라고 말했다. 지난해만 해도 이 문제는 10·3 불능화 합의에서 북한이 핵기술을 이전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함으로써 일단락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북한이 보기엔 그들이 즐겨쓰는 표현대로 미국 쪽이 ‘차단봉’을 내걸고 있는 것이다. 이쯤 되면 다음 수순은 낯설지 않다. 북은 동시행동 원칙을 내세워 미국의 테러지원국 해제를 요구하고 있다. 미국은 ‘신고 먼저, 해제 나중’이다. 책임전가의 공방이다. 연료봉 인출과 중유 제공이 협상국면을 지탱하고 있을 뿐 신고와 제재 해제 없는 불능화는 누구도 만족시킬 수 없다.
이미 시한은 넘겼다. 미국은 북한의 선택을 요구할 것이다. 브루킹스연구소의 마이클 오핸런 연구원이 주장하듯이 협상이 성공했을 때 북한이 얻는 혜택과 실패했을 때 치를 대가가 무엇인지 알도록 해야 한다는 논리다. 북한은 ‘신고 먼저’를 항복 요구로 간주할 것이다. 오핸런이 지적하듯이 미국은 압력수단으로 한국과 중국의 대북 협력 및 지원 중단을 요구할 것이다. 연료봉 인출 중단에 맞선 중유 지원 중단 시나리오 등 한반도의 봄은 흉흉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 출범 뒤 곧 열릴 한-미 정상회담에서 맞닥뜨릴 문제다. 그럼에도 새 정부는 간판만 내건 채 상당기간 ‘내부 수리중’일 가능성이 크다. 정권 인수를 불도저 운전하듯 해 온 인수위가 새겨야 할 교훈이 있다. ‘과유불급’이다. 지나치면 모자라느니만 못하다. 한쪽에선 출범도 전에 새 정부의 정책을 쏟아내고 다른 한쪽에선 그 정부 조직을 없애고 흔들어 놓았다. 새 정부 됐으니 새 사람 뽑아야 하고 작은 정부 한다고 했으니 줄이고 내보내야 한다. 대책은커녕 언제 자리잡고 앉아 손발이나 맞출 수 있을지 걱정된다.
강태호/남북관계 전문기자
kankan1@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