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9.02.26 18:06 수정 : 2019.02.26 19:47

김태규
정치팀 기자

“결국은 오세훈-김문수-정몽준이 단일화를 해서 박근혜와 맞설 것 같아.”

오세훈 서울시장이 무상급식 찬반투표를 강행하기로 결정한 2011년 6월, 이명박 정부 시절 잘나가던 공안검사는 다음해 치러질 대선에서 여당의 경쟁 구도를 이렇게 내다봤다. 야당 후보도 예측했다. “호남에서는 민주당이든 민노당이든 손학규로 뜻이 모아지는 것 같더라고. 2002년에 노무현을 선택했던 것처럼 이번에는 손학규를 선택한 것 같아. 문재인은 좀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렸지만 당시 잘나가던 공안검사가 들려주는 정치권 정보는 어수룩한 초선 국회의원의 얘기보다 훨씬 영양가 있게 들렸다. 공안검사가 정치권 동향에 밝은 건 특별히 이들이 ‘정치적’이어서가 아니다. 매우 요상한 조합이지만, 공안검사는 간첩을 잡으면서 동시에 선거범죄도 수사한다. 정치권 소식은 이들에게 직무상 필요한 정보라고 ‘선해’할 수 있겠다. 또 대공 수사 파트너인 국가정보원이 수집·제공하는 잡다한 국내 정보는 분석의 정확도를 높여줬다. 검찰 조직에서 공안검사들은 필연적으로 정치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집단이었다.

“(서울중앙지검의) 1차장 산하는 동물원이고, 2차장 산하는 식물원이다. 3차장 산하는 사파리다. 특수검사들은 너무 말을 안 듣는다는 게 맹점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임명한 두번째 검찰총수였던 한상대 총장은 정권에 노골적으로 굴종하다 1년3개월 만에 불명예 퇴임했지만, 수사 직역별 검사들의 특징을 기가 막히게 묘사한 명언 하나는 남겼다. 1차장이 관할하는 형사부는 동물원이기 때문에 울타리 안에서 통제가 가능하지만, 3차장이 관할하는 특수부 검사들은 사파리의 맹수처럼 통제가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2차장 산하 공안검사들은 물만 주면 볕을 찾아 소리 없이 잘 자라는 식물과 같단다. 보스와 정권의 뜻에 따라 시키는 대로 군말 없이 움직이는 게 공안검사라는 얘기다.

2015년 8월 박근혜 대통령과 황교안 새 총리가 청와대에서 임명장 수여식을 마친 뒤 환담장으로 향하며 대화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자유한국당의 새 당대표로 유력한 황교안 후보는 법무부 장관, 국무총리, 대통령 권한대행 이전에, 공안 수사로 이름을 날린 대한민국 국가대표 공안검사였다. 모범적으로 ‘식물원 생활’을 마치고 거물이 된 그는 이제 제1야당을 이끌겠다며 정치 출발선에 섰다. 그러나 그는 경선 과정에서 공안검사로서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고 말았다. 토론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돈 한푼 받은 거 입증되지 않았다. 탄핵이 타당한지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가 ‘그렇다면 대통령 권한대행 시절에 왜 가만히 있었느냐’는 비판이 일자 “헌재 결정을 존중한다. 탄핵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한 게 아니다”라며 말을 바꿨다. 이어 ‘배박’(배신한 친박) 논란이 일자 대통령 탄핵의 스모킹건이 된 최순실씨의 태블릿피시가 조작됐다는 주장으로까지 나아갔다. 본인의 전성기를 환하게 비춰주던 태양을 향한 그리움이 지나치다. 혹시 박 전 대통령이 감옥에 갇힌 지금의 상황을 ‘부분일식’ 정도로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식물원에서 햇볕을 갈구하던 공안검사 시절의 습성을 못 버렸다.

정치를 ‘잘 아는 것’과 정치를 ‘잘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다. 장관과 총리 시절 야당의 공세를 두루뭉술한 언변으로 눙치고 넘어간 실력으로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연패한 제1야당을 일으켜 세우기에는 역부족이다. ‘윗선’의 의중이 중요했던 공안검사 시절과 달리 이제 ‘황교안 대표’에게 윗선은 없고 본인이 보스다. 그는 식물원을 탈출할 수 있을까.

dokbul@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한겨레 프리즘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