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팀 기자 악수 하나로 ‘종교 갈등’을 일으킬 줄은 몰랐다. 취임 뒤 종교계 예방을 이어가고 있는 황교안 대표가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 스님에게 악수로 인사해 따가운 눈살을 받았다. 개신교계 언론과 불교계 언론이 가세하며 때아닌 ‘종교 전쟁’이 벌어졌다. 당 관계자는 “불교식 예법을 잘 모르는 차이”라고 무마했다. 부처님 앞은 몰라도, 합장해 오는 스님에게 손을 내밀면 불심이 아니라 상식에서 멀어진다. 흔한 ‘예방’이 사달로 이어진 일은 전에도 있었다. 노회찬 전 원내대표를 잃은 아픔이 채 아물지 않은 정의당과의 인사 자리에서 황 대표가 야당 간 협력과제로 “김경수 댓글 사건”을 거론했을 때다. “정치의 예부터 갖추길 바란다”(윤소하 정의당 원내대표)는 정의당의 유감 표명이 이어졌다. “통합과 화합”을 외쳤던 정치인치고 내딛는 발끝마다 파문이 거친 것은 비단 그가 ‘정치 초보’인 까닭일까. 전당대회 당시 그가 보여준 모습은 능란한 대중 정치인과는 거리가 있었다. ‘원고를 읽는’ 듯한 모습이 많았고, 알쏭달쏭한 원칙론만 반복해 ‘황세모’라는 별명을 얻었다. 전당대회 개표 마무리 발언 때는 노래로 대신해 ‘밥 먹기보다 말하기를 더 좋아하는’ 정치인들만 보아온 정치부 기자들의 허를 찔렀다. 야당임에도 ‘우리 정부’라는 말이 입에 붙어 ‘총리 시절 버릇 못 버렸다’는 수군거림을 불렀다. 탄핵, 5·18 등 곤란한 질문엔 아직도 “미래를 얘기합시다”가 레퍼토리다. 그러던 황 대표가 최근 ‘좌파 독재’론을 들고 거침없이 질주 중이다. 당내에선 “‘황고구마’라던 황 대표가 달라지지 않았느냐”며 흐뭇해하는 분위기다. 당내 조언을 받아 치밀한 메시지 조율 과정을 거친다고 한다. 4·3 보궐선거를 앞두고 있는데다 발언 수위가 올라갈수록 지지층이 결집하는 현상이 배경이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작 내놓는 발언의 면면을 보면, 화자와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정권비리와 국정농단이 도를 넘어서고 있는데도 감사원과 검찰이 엄호하고 수수방관하고 있다. 좌파 독재를 부추기는 행태”(14일 최고위원회의)라며 ‘국정농단’을 언급하거나, “이중국적 상태로 군대에 안 가는 내로남불의 전형”(20일 최고위원회의) 같은 말을 할 때다. 그는 최순실 국정농단이 박근혜 정부를 쓰러뜨리기까지 국무총리였고, 병역 문제로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곤 했다. 싸울 각오는 확고해 보인다. 정계 입문 전, 황 대표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과 비교되며 그의 ‘정치 의지’를 의심하는 시선에 맞부닥쳤다. 당시 그가 “수백명의 ‘적’들 사이를 걸어본 적 있느냐”며 들려준 대답이다. “나는 (공안)검사 시절, 법정에 들어설 때 일부러 방청객들 사이로 지나가곤 했다. 그 정도 각오가 되어 있지 않으면, 재판에서 논리를 세울 수가 없다.” 그러나 정치는 법정과 다르다. 돌풍은 역풍을 부르는 것이 정치의 생리다. 역풍을 헤쳐나가는 데서 정치인의 진짜 자세가 드러난다. 최근 김학의 전 차관 성접대 사건으로 공격을 받자, 황 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악한 세력과 천사가 존재한다”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자신을 비판하는 이는 ‘악한 세력’으로, 함께하는 국민은 ‘천사’로 칭했다. 정치인들의 입에서 미친개나 심지어 바퀴벌레라는 소리가 나왔을 때보다 놀라웠다. 대결의 정치를 넘어, 선과 악의 구도가 공고한 믿음으로 덧칠된 까닭이다. 그는 “좌파 운동권 집단 카르텔”, “귀족노조”를 “썩은 뿌리는 꽃을 피우지 못한다”며 “뽑아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종교의 언어, 심판의 언어다. 역시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알려진 이명박 전 대통령은 대통령이 된 뒤 불교계를 찾아 합장하며 말했다. “낮은 자세로 국민을 섬기겠다. 불교에서 말하는 ‘하심(下心·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는 마음)하라’는 가르침이다.” 황교안은 세속의 지도자로 거듭날 수 있을까. edge@hani.co.kr
칼럼 |
[한겨레 프리즘] 생무지와 소신 사이 / 정유경 |
정치팀 기자 악수 하나로 ‘종교 갈등’을 일으킬 줄은 몰랐다. 취임 뒤 종교계 예방을 이어가고 있는 황교안 대표가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 스님에게 악수로 인사해 따가운 눈살을 받았다. 개신교계 언론과 불교계 언론이 가세하며 때아닌 ‘종교 전쟁’이 벌어졌다. 당 관계자는 “불교식 예법을 잘 모르는 차이”라고 무마했다. 부처님 앞은 몰라도, 합장해 오는 스님에게 손을 내밀면 불심이 아니라 상식에서 멀어진다. 흔한 ‘예방’이 사달로 이어진 일은 전에도 있었다. 노회찬 전 원내대표를 잃은 아픔이 채 아물지 않은 정의당과의 인사 자리에서 황 대표가 야당 간 협력과제로 “김경수 댓글 사건”을 거론했을 때다. “정치의 예부터 갖추길 바란다”(윤소하 정의당 원내대표)는 정의당의 유감 표명이 이어졌다. “통합과 화합”을 외쳤던 정치인치고 내딛는 발끝마다 파문이 거친 것은 비단 그가 ‘정치 초보’인 까닭일까. 전당대회 당시 그가 보여준 모습은 능란한 대중 정치인과는 거리가 있었다. ‘원고를 읽는’ 듯한 모습이 많았고, 알쏭달쏭한 원칙론만 반복해 ‘황세모’라는 별명을 얻었다. 전당대회 개표 마무리 발언 때는 노래로 대신해 ‘밥 먹기보다 말하기를 더 좋아하는’ 정치인들만 보아온 정치부 기자들의 허를 찔렀다. 야당임에도 ‘우리 정부’라는 말이 입에 붙어 ‘총리 시절 버릇 못 버렸다’는 수군거림을 불렀다. 탄핵, 5·18 등 곤란한 질문엔 아직도 “미래를 얘기합시다”가 레퍼토리다. 그러던 황 대표가 최근 ‘좌파 독재’론을 들고 거침없이 질주 중이다. 당내에선 “‘황고구마’라던 황 대표가 달라지지 않았느냐”며 흐뭇해하는 분위기다. 당내 조언을 받아 치밀한 메시지 조율 과정을 거친다고 한다. 4·3 보궐선거를 앞두고 있는데다 발언 수위가 올라갈수록 지지층이 결집하는 현상이 배경이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작 내놓는 발언의 면면을 보면, 화자와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정권비리와 국정농단이 도를 넘어서고 있는데도 감사원과 검찰이 엄호하고 수수방관하고 있다. 좌파 독재를 부추기는 행태”(14일 최고위원회의)라며 ‘국정농단’을 언급하거나, “이중국적 상태로 군대에 안 가는 내로남불의 전형”(20일 최고위원회의) 같은 말을 할 때다. 그는 최순실 국정농단이 박근혜 정부를 쓰러뜨리기까지 국무총리였고, 병역 문제로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곤 했다. 싸울 각오는 확고해 보인다. 정계 입문 전, 황 대표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과 비교되며 그의 ‘정치 의지’를 의심하는 시선에 맞부닥쳤다. 당시 그가 “수백명의 ‘적’들 사이를 걸어본 적 있느냐”며 들려준 대답이다. “나는 (공안)검사 시절, 법정에 들어설 때 일부러 방청객들 사이로 지나가곤 했다. 그 정도 각오가 되어 있지 않으면, 재판에서 논리를 세울 수가 없다.” 그러나 정치는 법정과 다르다. 돌풍은 역풍을 부르는 것이 정치의 생리다. 역풍을 헤쳐나가는 데서 정치인의 진짜 자세가 드러난다. 최근 김학의 전 차관 성접대 사건으로 공격을 받자, 황 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악한 세력과 천사가 존재한다”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자신을 비판하는 이는 ‘악한 세력’으로, 함께하는 국민은 ‘천사’로 칭했다. 정치인들의 입에서 미친개나 심지어 바퀴벌레라는 소리가 나왔을 때보다 놀라웠다. 대결의 정치를 넘어, 선과 악의 구도가 공고한 믿음으로 덧칠된 까닭이다. 그는 “좌파 운동권 집단 카르텔”, “귀족노조”를 “썩은 뿌리는 꽃을 피우지 못한다”며 “뽑아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종교의 언어, 심판의 언어다. 역시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알려진 이명박 전 대통령은 대통령이 된 뒤 불교계를 찾아 합장하며 말했다. “낮은 자세로 국민을 섬기겠다. 불교에서 말하는 ‘하심(下心·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는 마음)하라’는 가르침이다.” 황교안은 세속의 지도자로 거듭날 수 있을까. edge@hani.co.kr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