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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이림니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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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를 추구하되 ‘법도’ 살필 것 예술작품의 모방에 관한 논의는 서양보다 동아시아에서 더 치열하게 전개되어 왔다. 고대부터 당대까지 중국 시학의 요점은 모방과의 싸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루쉰(魯迅)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 견준 중국의 고대 문학이론서가 있다. 유협(465~532로 추측)의 <문심조룡>(文心雕龍)이 바로 그 책이다. 그는 전고(典故)를 활용할 것을 주문했다. “경서(經書)의 우아한 어휘를 공부하여 언어를 풍부하게 한다면 이는 광산에 가서 구리를 주조하고, 바닷물을 쪄서 소금을 만드는 것과 같다”고 했다. 모방을 배우는 것, 그게 글쓰기의 기본이라는 것이다. 이렇듯 중국의 시인과 이론가들은 전고의 활용 여부가 창작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보았다. 즉 앞선 전통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에 대해 오랫동안 의견을 주고받은 것이다. 그러면서도 <문심조룡>은 ‘통변(通變)의 기술’이 중요함을 강조하였다. 여기에서 ‘통’이란 전통의 계승을 가리키는 말이고, ‘변’은 말 그대로 전통의 변화를 꾀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이론은 “문장을 이루는 문학양식에는 일정한 법칙이 있지만 표현의 기교에는 정해진 규율이 없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먼 고대부터 중국인들은 창작에 임할 때에 작가의 진정성(문심)과 언어의 예술적 표현(조룡)이 조화와 통합을 지향해야 한다는 시각을 이미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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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이림니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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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시가는 모방 놓고 논쟁도 현대에 와서도 시 창작에 대한 고민은 모방에 대한 고민과 궤를 같이한다. 모방할 것인가, 말 것인가? 가령 모방을 한다면 어디까지 모방하고, 무엇을 모방하며, 언제까지 모방할 것인가? 이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습작기에 있는 사람들의 모방의 형태를 한번 살펴보자. 우선, 전범이 되는 시인이나 시적 경향을 추종하는 일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주제와 소재를 비롯한 시의 내용을 답습하는 일, 운율이나 언어 사용 기법 등 형식을 답습하는 일, 그리고 구체적인 문장이나 어휘 표현을 베껴 도용하는 일이 모두 모방의 범주에 속한다. 여기에다가 창작자 자신이 자신의 언어를 무의식적으로 동어 반복하는 일도 일종의 자기모방에 해당한다. 김춘수는 모방을 일삼는 사람들을 아류라는 말로 평가 절하한다. 아류란 스타일과 소재를 따라다니는 사람이라며 “이런 사람들은 독창적인 어떤 시인의 뒤만 따라다니면서 세상에 남이 입다가 낡아서 벗어던진 헌옷만을 주워다가 헐값으로 팔아서 퍼뜨리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경박성을 통박하면서도 그는 습작기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시인의 시를 모방하게 되는 일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한발 물러선다. 그러나 “습작이란 남의 영향권을 벗어나는 작업”이므로 남의 아류에 언제까지나 머물러 있으면 안 된다고 하였다. 이쯤에서 당신은 작은 답을 구하기 바란다. 혼자 써놓고 혼자 보는 시라면, 그걸 습작이라 한다면, 남의 옷을 입고 자신의 옷이라고 우기고 싶지 않다면 당신은 모방할 줄 알아야 한다. 하늘에서 시적 영감이 번개 치듯 심장으로 날아오기를 기다리지 마라. 그보다는 차라리 흠모하는 시인의 시를 한 줄이라도 더 읽어라. 시험을 대비하는 공부도 하지 않고 ‘나는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지 마라. 남의 것을 훔쳐보는 행위는 부도덕한 짓이지만 훔쳐볼 생각도 하지 않고 답안지 쓰기를 포기한 사람은 바보다. 당신은 모방할 줄 모르는 바보가 되지 마라. “아들아 너를 보고 편하게 살라고 하면/ 도둑놈이 되라는 말이 되고/ 너더러 정직하게 살라 하면/ 애비같이 구차하게 살라는 말이 되는/ 이 땅의 논리”(정희성, <아버님 말씀>)대로 말한다면 당신에게 모방을 하라고 하면 도둑질을 하라는 것이 되고, 당신에게 새로이 창조하라 하면 구차한 표현을 일삼으라는 말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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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의 시와 연애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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