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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6.14 19:35 수정 : 2006.06.14 19:35

김병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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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에피루스의 피루스 왕은 기원전 279년 로마군과 전투에서 승리했지만, 너무 많은 병사를 잃었다. 그는 “이런 승리를 한번 더 거뒀다간 우리가 망한다”고 했다. ‘피루스의 승리’는 ‘상처뿐인 승리’란 뜻으로 쓰인다.

리처드 탈러는, 경매에서 지나치게 높은 값을 써낸 탓에 이기고도 진 것만 못한 경우를 맞는 일이 있다며, 이를 ‘승자의 저주’라고 불렀다. 본질 가치가 1천만달러인 유전 경매에서, 어떤 기업이 유전 값어치를 과대 평가해 2천만달러에 낙찰받았다고 치자. 그 기업은 입찰에선 승리하지만 큰 손해를 본다.

현실 세계에서도 승자의 저주는 심심찮게 목격된다. 1990년대 초 미국의 에이티앤티(AT&T)는 엔시아르(NCR)란 기업을 인수합병이 발표될 때보다 두 배 넘는 값에 인수했다가 4년간 30억달러 가량 손해봤다. 2000년 영국 정부가 한 아이엠티2000 주파수 경매에선 통신업체들이 과당경쟁 끝에 무려 38조5천억원에 낙찰받았다가 비용부담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연예인이 입던 옷이야 얼마에 낙찰받건 자신이 좋아하면 그만이나, 기업 세계에선 시장가격보다 비싼 값에 무리하게 낙찰받으면 손해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경영자가 낙관적 직관 아래 움직이거나, 경쟁기업을 제치고 보자는 욕심을 가지면 이런 일이 생기기 쉽다고 한다.

대우건설, 엘지카드 등 매물로 나온 기업들의 값이 애초 매각 계획이 잡혔을 때보다 두배 가까이로 올랐지만 서로 먹겠다고 달려들고 있다. 외환은행도 마찬가지였다. 국민은행은 하나금융지주를 제치고 외환은행을 따냈지만, 6조여원이란 천문학적 대금을 치르게 돼 있다. 금융계에서는 그만한 시너지가 있을지 희의적이다. 승자의 축복은 외환은행을 팔아 4조여원의 이익을 얻을 론스타가 챙기고, 저주는 국민은행이 안는 꼴이 될 수도 있다.

김병수 논설위원 byung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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