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동조 |
수천 마리의 반딧불이가 한꺼번에 반짝이고, 축구를 보러온 수만명의 관중들이 파도타기 응원을 한다. 잘 짜인 각본에 따라 누가 솜씨있게 지휘하는 것처럼 아름답게 움직인다. 이른바 ‘동조 현상’이다.
동조는 상호작용을 통해 서로를 강화시킴으로써 부분의 합을 뛰어넘는 새로운 질을 창출한다. 사람의 뇌 활동이 그렇고, 사회적 에너지가 고양되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과학자들은 많은 자연현상과 사회적 행태의 배경에는 동조가 있다고 믿는다. 물론 동조에는 조건이 필요하다. 이 분야의 권위자인 스티븐 스트로가츠 미국 코넬대 응용수학과 교수는 비교적 동질적인 많은 개체가 너무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은 수준으로 영향을 주고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올해 1/4분기 가계수지 동향을 보면, 상위 20%의 가구가 세금 등을 뺀 전체 처분가능 소득의 42%를 가져간다. 다음 20%는 24%, 그 다음은 17%, 그 다음은 12%, 최하 20%는 5%로 뚝 떨어진다. 쓰고 남은 돈의 경우는 훨씬 더하다. 전체 흑자액에서 상위 20%가 차지하는 비중은 3분의 2에 이르는 반면, 전체 가구의 31%는 적자 상태다. 흑자액의 격차는 재산의 격차로 이어지고, 시간이 갈수록 증폭되기 마련이다. 돈걱정을 크게 하지 않고 사는 가구를 중산층이라고 한다면 다달이 몇십만원 정도는 남길 수 있어야 한다. 그런 가구의 비율은 30~40%밖에 안 된다.
흔히 “세계화 시대에는 똑똑한 한 사람이 백 사람을 먹여살린다”고 한다. 이는 중산층이 탄탄하고 동질성이 확보된 사회에 걸맞은 말이다. 이런 곳에서는 서로 자극하고 끌어주면서 삶의 새로운 영역을 만들어가는 동조가 수시로 일어난다. 지금 우리는 전체 가구 가운데 3분의 1은 적자이고, 20%는 겨우 수지를 맞추며, 중산층은 3분의 1 남짓한 사회, 곧 동조가 쉽지 않은 사회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김지석 논설위원실장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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