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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6.09 20:56 수정 : 2006.02.21 18:39

우리나라의 대학 수학능력 시험에 해당하는 미국의 ‘새트’(SAT)가 올해부터 쓰기 시험을 추가했다. 주제문을 읽고 관련된 내용의 글을 25분 안에 써야 한다. 그야말로 속필 경쟁이다. 글쓰기 전문가도 ‘너무 생각하지 말고, 쓴 글은 고치지 마라’고 조언한다. 학생들의 스트레스는 커졌지만 사교육 업자들은 즐겁다. 예상되는 추가 수입이 연 2억달러에 이른다.

몇 차례 시험을 치러보니, 긴 글이 대개 점수가 높았다. 흐름이 괜찮으면 구체적인 사실이 틀려도 별 문제가 안 된다. 많은 영어 교사·교수들은 퇴고와 정확성을 희생시키는 이 시험이 글쓰기의 바른길에 어긋난다고 비판한다. 틀에 박힌 글을 쓰도록 유도해 교육을 망칠 것이라는 우려도 높다. 하지만 새트 주관사 쪽은 ‘글쓰기 기본 기술 가운데 하나를 측정할 뿐’이라고 피해 나간다.

글쓰기는 인류 문명의 기초다. 문장과 시부를 중시했던 유교사회가 그랬고, 서양 중세 대학도 문법·수사학·논리학을 중심으로 운영됐다. 지식의 중요성이 커진 현대사회는 말할 나위도 없다. 그렇더라도 대학 수험생에게 부적절한 방식으로 과도한 부담을 지우는 것은 무책임하다. 새트의 글보다 분량이 몇 배나 길고 내용도 훨씬 어려운 우리의 ‘본고사형 논술시험’ 얘기다.

많은 수험생이 사상사에서부터 시작해 갖가지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쟁점을 달달 익히고, 영어와 한자 예문에도 익숙해지기 위해 애쓴다. 옛날 과거시험 준비가 이랬을까 싶다. 대학 교육을 받기 위한 글쓰기 능력을 측정하는 게 아니라 대학에서 가르쳐야 할 것을 미리 요구한다. 정해진 분량을 채워야 점수가 나오니 ‘생각은 짧아도 글은 길게’ 쓰는 요령도 알아야 한다. 게다가 새트의 쓰기 점수는 전체의 8% 남짓하지만 논술시험은 당락을 좌우한다. 기능이 이상 비대해진 논술시험에 교육당국과 학교는 거의 손을 놓았고 사교육 시장만 번성하니 큰 일이다.

김지석 논설위원실장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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