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순이 |
현재 살아 있는 가장 유명한 ‘순이’는 여배우 순이 프레빈일 것이다. 8살 때 미국으로 입양된 그는 배우 미아 패로의 딸로 살다가 패로의 배우자였던 감독 겸 배우 우디 앨런(1935~)과 결혼했다. 서른다섯 살 연상인 남편과 함께 최근 칸 국제영화제에 나타난 그는 차분하고 당당했다.
인생에 등급이 있으랴마는, 남들의 눈에는 비(B)급으로 보이는 삶을 순이들은 씩씩하게 살아간다. 요즘 뜨는 드라마 〈굳세어라 금순아〉와 〈내 이름은 김삼순〉에 나오는 두 순이도 마찬가지다. 가진 것 없이 끈질긴 생명력과 순박함으로 21세기의 살벌한 도시문명을 헤쳐나가는 이들의 모습에서 시청자들은 강렬한 대리만족을 얻는다.
지난해 전세계의 백만장자가 전년도보다 60만명 늘어난 830만명을 기록했다. 부자들의 재산을 불려주고 돈을 버는 미국 투자회사 메릴린치의 집계 결과다. 세계 인구의 0.13%에 불과한 이들의 재산을 합치면 30조8천억달러로, 지구촌 전체의 한해 총생산에 육박한다. 여기서 백만장자는 ‘주거용 집 한 채를 뺀 자산이 백만달러(10억원) 이상인 사람’이니 실제로는 ‘이백만장자’쯤 된다. 게다가 이들의 부는 앞으로 5년 동안 매년 경제성장률의 2배 정도인 6.5%씩 늘어날 전망이다. 부익부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어서, 지난해 백만장자가 7만1천명으로 부풀어오르며 세계에서 7번째 높은 증가율(10.5%)을 기록했다. 세계 백만장자는 재산의 13%만을 부동산으로 갖고 있는 데 비해 우리나라는 부동산 위주인 것도 특별하다. 그런데 우리나라 가구 가운데 40%는 아직 자기 집이 없고, 백수 생활을 하는 젊은이는 갈수록 늘어난다.
순이는 이런 현실에서 위안받고 싶은 서민들의 마음을 달래주는 진통제다. 하지만 배우 순이는 몰라도 금순이와 삼순이는 이 땅에 발붙이기 어려우니, 이를 어찌 할까.
김지석 논설위원실장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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