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팔등신 |
댄 브라운의 소설 <다빈치 코드>에서 박물관장 자크 소니에르는 피습당해 숨지기 직전 자신의 몸을 ‘비트루비우스의 인체도’처럼 눕힌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떠올리라는 암호다. 비트루비우스는 기원전 1세기의 건축가로 <건축>이란 책에서 ‘자연이 빚은 인체비례’를 설명했다. 이를 재발견해 다빈치가 그린 그 인체도에는 “턱 끝에서 정수리 끝까지의 머리 길이는 키의 8분의 1”이라고 설명돼 있다. 가장 아름다운 체형은 ‘8등신’이라는 것이다.
다빈치가 그린 인체도의 사람은 머리칼 때문에 머리가 아주 커 보인다. 하지만 재어 보면 머리 길이가 키의 8분의 1이 확실하다. 물론 서양에서도 처음부터 8등신이 가장 아름다운 인체비례로 여겨졌던 것은 아니다. 기원전 5세기 무렵의 조각가 폴리클레이토스는 ‘7등신’론을 폈다. 리시포스가 8등신론으로 이를 대체했고, 그것이 비트루비우스로 이어졌다. 밀로 섬에서 발견된 비너스상은 대표적인 8등신 조각상이다.
우리 조상들의 체형은 8등신과는 큰 거리가 있다. 옛 그림으로 따져보면 고구려 사람들은 5.8등신, 조선시대 사람들은 6.4등신이라고 한다. 그런데, 식생활이 변해선지 한국인의 체형도 갈수록 서양인을 닮아가고 있다. 산업자원부 기술표준원이 8천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지난해 말 발표한 한국인의 체형은 20대 여자가 7.2등신, 20대 남자는 7.37등신이다. 60대 여자는 6.92등신, 60대 남자는 7.05등신이다. 갈수록 키는 커지는 반면, 머리는 작아지고 있다.
세종대 회화과 김동우 교수는 1999년 5등신 ‘모자’상을 교내에 세웠는데, 이사장한테 8등신으로 고치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를 거부했다가 그는 2001년 재임용 심사에서 탈락했다. 어머니의 사랑이 체형에 좌우되지는 않을텐데 …. 오랜 법정 싸움을 이긴 김 교수가 최근 이사회의 복직 결정을 받았다니 반갑다.
정남구 논설위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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