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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2.06 15:30 수정 : 2019.02.06 19:18

하도 많이 써먹어서 이젠 별도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로 모두에게 익숙해졌을까? 그 지겨운 용어 정의를 다시 따라가보자. ‘국민연금, 자산운용사 같은 기관투자자들이 주인(고객)의 자산을 맡아 관리하는 집사(스튜어드)처럼 고객을 대신해 투자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해 고객의 자산을 충실하고 선량하게 관리하도록 하는 자율 지침’. 우리말로 하면 ‘기관투자자 행동지침’쯤 되겠다.

반복 사용에도 ‘스튜어드십 코드’는 그 뜻만큼이나 발음도 편안함과는 거리가 멀다. 글자 수가 적지 않으니 ‘말의 경제성’도 없다. 정부나 국민연금이 굳이 이 낯선 용어를 그대로 채택해 써온 이유가 궁금하다. 그럴듯하고 잘나 보이는 원어를 동원한 요란한 포장술이었던가? 아니면 낯설고 흐릿한 용어로 관심과 논란을 피하자는 속셈이었을까? 주주권이라는 그 당연한 권리를 행사하는 일에 ‘연금 사회주의’라는 터무니없는 꼬리표를 붙이려 드는 실정이었으니 그랬을 수도 있겠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용어 못지않게 첫 적용 사례의 결과 또한 흐리멍덩했다. 설 연휴 직전인 지난 1일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위원장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는 4시간 넘는 회의 끝에 대한항공에 대해선 경영참여 주주권을 행사하지 않고, 한진칼에 대해선 ‘제한적 범위’에서 적극적 주주권을 행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대한항공은 물론 한진칼에 대해서도 실제론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하는 상징적 의미에 불과한 결정이다.

스튜어드십 코드라는 표현을 알기 쉬운 우리말로 고쳐 썼다 해서 그 결과가 다르지는 않았을 수 있다. 그렇지만 용어 설명을 반복해서 하거나 듣는 성가심을 줄이고, 지침과 정책 자체에 관심을 집중시키는 데엔 유익하지 않았을까 싶다.

스튜어드십 코드만이 아니다. 어려운 외국어 표현을 남발하는 건 ‘촛불정부’도 예외가 아니다. ‘규제 임시해제’ 정도면 될 것을 굳이 ‘규제 샌드박스’라 한다. 태스크포스팀(전담반), 로드맵(계획·전략)은 정부 공식문서에서 일상적으로 쓰는 지경에 이르렀다. 보건복지부의 ‘커뮤니티 케어’, 중소벤처기업부와 서울시의 ‘제로 페이’는 또 어떤가. 시민들을 정책에서 소외시킬 목적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비즈니스 프렌들리(친기업) 정부’의 ‘어륀지’(오렌지) 맛이 제법 달달했던 모양이다.

김영배 논설위원 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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