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2.18 18:02
수정 : 2019.02.18 21:52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다른 시기에 다른 역할을 수행하도록 부르십니다. 하나님은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의 대통령이 되길 원하셨다고 생각합니다.”
기독교 목회자가 아닌 미국 정부 핵심 공직자의 공개발언이다.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최근 기독교 방송 <시비엔>(CBN)과 한 인터뷰에서 “그(트럼프)는 신심 있는 자들이 신경 쓰는 많은 것들을 위해 대단한 일을 한다”고 말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종교집회에서 “수도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했던 것과 쌍벽을 이룰 만하다.
미국의 일부 백인·개신교·공화당 지지자들의 ‘정치적’ 신앙심은 깊고 굳세다. 지난주 <폭스뉴스>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하나님이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원하셨다고 믿느냐’는 물음에 자신이 ‘백인 개신교 복음주의자’라고 밝힌 응답자의 55%가 “그렇다”고 답했다. “아니요”는 3명 중 1명에 그쳤다. 공화당 지지자 중에선 45%가 “그렇다”고 믿는다. 전체 응답률(25%)의 갑절이다.
반면 가톨릭 신도들의 “그렇다”는 의견은 20%로 전체 평균보다 낮았다. 민주당 지지자들의 동의율은 10%로 뚝 떨어졌다. 개신교 복음주의자의 77%가 공화당을 지지하는 것과 뚜렷하게 대조된다. 기독교 근본주의와 정치적 보수 성향 사이에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거듭 확인된 셈이다. <워싱턴 포스트>는 “트럼프가 복음주의 공동체의 정치적 지지를 확보하려 그들이 중요하다고 믿는 이슈에 집중한다”며 “폭스뉴스의 여론조사는 그 전략이 효과적임을 시사한다”고 봤다.
개인의 신념을 국가나 정부의 정책과 동일시할 일은 아니다. 더욱이 미국은 국교를 인정하지 않는 세속주의 국가다. 대통령이 취임 선서 때 기독교 성서에 손을 얹는 관례가 있지만 헌법 규정은 아니다. 그럼에도 폭스뉴스의 여론조사 결과는 ‘트럼프 시대’ 미국 사회의 분위기를 보여주는 한 징표로 읽힌다.
서구 ‘종교개혁’의 고갱이인 복음주의와 ‘아메리카 퍼스트’를 내세운 트럼피즘이 만나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기독교 국가주의’를 키우는 건 역설적이다. 유럽에서 400년 가까이 이어진 십자군전쟁도 종교적 열정과 세속적 욕망의 잘못된 만남이 빚은 살육극이다. 미국이 이슬람 근본주의(그 대부분은 테러단체로 지정됐다)로 낙인찍은 이들의 눈에는 하나님이 트럼프 대통령을 내려주셨다는 미국인들이 어떻게 비칠까?
조일준 국제뉴스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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