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3.12 19:16
수정 : 2019.03.12 19:40
꼭 160년 전, 찰스 다윈이 나이 오십에 출간한 <자연선택에 의한 종의 기원에 대하여>(1859)는 근대 과학혁명의 거대한 분수령이다. 모든 생물은 환경에 적응한 개체들이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아 그 유전적 형질을 자손에 대물림하며, 그 과정에서 다양한 생물 종이 분화된다는 게 뼈대다.
그런데 <종의 기원>보다 무려 1000년이나 앞서 다윈의 진화론과 놀랍도록 비슷한 주장을 펼친 학자가 있다. 8~9세기 이라크 바스라 출신의 사상가이자 문인, 과학자였던 알자히즈(776~868)다. 당시 아랍제국의 아바스 왕조는 바그다드에 수도를 두고 북아프리카와 중동의 광대한 영토를 통치하며 당대 최고 수준의 문명을 꽃피웠다. 고대 그리스의 지적 유산이 아랍어로 번역됐고, 종교, 자연과학, 철학, 문학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논쟁이 뜨거웠다. 바그다드는 이성과 지식의 비옥한 토양을 가꾸던 이슬람 세계의 중심이었다. 알자히즈는 그곳에 50년 넘게 머물면서 200여권의 책을 썼다고 한다. 그의 본명은 따로 있었지만, 부리부리한 눈 때문에 ‘왕방울 눈’이란 뜻의 알자히즈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바그다드의 파파이스’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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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르에서 발행한 우표에 알자히즈의 초상화 그림이 그려져 있다. 출처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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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명저 중 하나가 <동물에 대한 책>이다. 모두 7권 분량에 350여종의 동물을 소개한 백과사전이다. “동물들은 생존과 자원을 확보하려, 그리고 포식자에게 잡아먹히지 않으며 번식하기 위해 투쟁한다. 환경적 요인은 생명체가 생존하기 위한 새로운 특징을 발전시키며, 그럼으로써 동물은 새로운 종으로 변이한다. 살아남아 번식한 동물은 그 성공적인 형질을 후손에게 물려준다.”(무슬림닷컴)
알자히즈는 인간 역시 진화의 한 단계에 있는 동물이라고 갈파했다. 쥐-뱀-비버-여우를 예로 들어 먹이사슬을 설명한 뒤, “이런 관점에서, 인간은 동물과 다르지 않다. 비록 (진화 경로에서) 궁극적인 도착점이 같지는 않을지라도 말이다”라고 썼다. 인간은 신이 빚은 최고의 피조물이라고 굳게 믿던 당시 유럽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전복적인 사상이었다.
알자히즈는 92살까지도 지적 욕구를 불태우다 문자 그대로 ‘책에 파묻혀’ 생을 마감했다. 서재의 책장에서 책을 꺼내려다 무거운 책장이 쓰러지면서 그를 덮친 것. 그는 생전에 동물과 구별되는 인간의 미덕을 통찰한 글도 남겼다. “웅변가가 자신의 달변을 내세우지 않듯, 고귀한 자는 스스로 고귀한 체하지 않는다. 불한당이 허풍을 떠는 건 자신의 약점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교만은 (…) 모든 죄악 가운데 가장 나쁘다. 겸손은 모든 행위 가운데 가장 선한 자비보다도 더 좋은 것이다.”(앨버트 후라니, <아랍인의 역사>)
조일준 국제뉴스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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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자히즈의 저작 <동물에 대한 책>의 한 쪽에 기린과 새가 그려져 있다. 출처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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