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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6.23 18:21 수정 : 2019.06.23 19:32

전북 전주 상산고 출신인 김아무개(51)씨는 1984년 입학 때 동기들과 함께 학교로부터 <수학의 정석> 한 세트를 선물받았다. 해설서를 포함해 10권가량 됐던 것 같다고 기억했다. 책의 지은이를 이사장으로 둔 학교의 전통에 따른 것이었다. “수학 공부를 특별히 열심히 시키는 분위기였다. 교내에서 수학 경시 대회도 많이 했고 수학에 강하다는 평을 들었다.”

고등학교 수학 참고서의 ‘바이블’로 일컬어지는 <수학의 정석> 초판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66년 8월이었다. 서울대 수학과 재학 시절부터 학원 강사로 이름을 날렸던 홍성대씨가 3년에 걸친 작업 끝에 내놓은 산물이었다. ‘정석’(定石)은 ‘공격과 수비 어느 쪽에서 보더라도 그때그때 둘 수 있는 최선의 수’라는 바둑 용어에서 따온 것이었다.

<수학의 정석>은 초판부터 요샛말로 ‘대박’이었다. 출간 첫해에만 3만5천권이나 팔려 나갔다. 전성기였던 1980년대와 1990년대 전반에는 한해 판매량이 150만~180만권에 이르렀다. 지금도 매년 100만권가량 판매되고 있다고 한다. 현재 이 책을 펴내고 있는 성지출판에 누적 판매량을 물었더니 ‘대외비’라며 공개하지 않았다. 초판 출간 40주년인 2006년 8월 성지출판에서 내놓은 보도자료에서 3700만권, 50주년인 2016년 8월 출판계 추정으로 4500만~4600만권이었다고 하니 53년 누적은 대략 5000만권에 이른 것으로 짐작된다.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얼추 한권씩 돌아가는 엄청난 분량이며, 국내에선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책이라는 명성을 불러올 만한 숫자다.

<수학의 정석>은 인기를 끈 만큼 구설에도 올라, 일본 책을 베꼈다는 표절 시비에 휘말리기도 했다. 이에 홍 이사장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외국책하고 비교해서 한 페이지라도 같은 걸 찾아서 갖고 오면 포상을 해주겠다”고 반박한 바 있다.

홍성대씨는 <수학의 정석>으로 벌어들인 수익금으로 학교법인 상산학원을 설립하고 1981년 고향(정읍 태인) 인근인 전주에 상산고를 열었다. ‘상산’은 고향 근처의 상두산(象頭山)에서 따온 자신의 아호였다. 상산고는 2002년 지금의 자율형사립고(자사고)의 전신인 자립형사립고로 지정됐다. 이명박 정부 출범 뒤인 2009년 초중등교육법시행령 개정으로 마련된 법적 근거에 따라 2010년 자사고로 전환했다.

상산고가 20일 발표된 전북도교육청 심의 결과에서 자사고 재지정 기준점(80점)에 미달하는 79.61점을 받았다. 교육부 장관 동의라는 마지막 절차를 거치면 자사고에서 탈락하게 될 처지여서 교육계 안팎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전국 자사고 42곳 가운데 상산고를 비롯해 21곳이 재지정 평가 절차를 밟고 있어 거센 논란이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교육 다양화’라는 자사고의 취지가 ‘입시 위주 수업’으로 변질됐다는 게 시비의 골자다. 자사고 운영은 <수학의 정석>과 달리 ‘바둑의 정석’을 따르지 못했던 것일까?

김영배 논설위원 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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