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6.24 17:18
수정 : 2019.06.24 19:01
1976년 11월 독일 남부의 작은 시골도시에 교육자, 정치가, 연구자들이 모여들었다. 이틀간 토론회엔 좌파, 중도파, 우파를 망라한 학자 5명이 발제자로 나서 서독 정치교육의 내용과 방향을 두고 격론을 벌였다. <시민교육이 희망이다>의 저자 장은주 영산대 교수에 따르면, 배경엔 68혁명 세례를 받은 젊은 교사들의 증가, 일부 주에서 사민당 집권에 따른 보수파의 위기의식이 있었다고 한다. ‘합의’ 같은 건 없었다. 하지만 이후 한스게오르크 벨링 박사가 ‘최소한’의 공통분모를 뽑아 책으로 냈고,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서 차츰 학교 현장에서 정치교육의 원칙으로 자리잡게 된다. 유명한 ‘보이텔스바흐 합의’다. 강압적인 교화나 주입을 금지한다는 ‘강제성의 금지’, 사회에서 논쟁적인 것은 학교에서도 논쟁적인 것으로 다룬다는 ‘논쟁성의 유지’, 그리고 학생들의 ‘정치적 행위능력 강화’라는 세가지 원칙은 독일 번영과 통합의 근간이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1990년대 네오나치나 극단주의, 인종주의의 등장은 정치교육이 반드시 삶의 태도에서도 민주주의자들을 길러낸 것은 아니라는 비판에 부딪쳤다. 지식과 이론 위주의 정치교육에 대한 반성 속에 2000년대 독일에선 연방정부와 주정부가 함께 ‘민주주의 배우기와 살아가기’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그 중간 결과물로 2005년 ‘마그데부르크 선언’을 발표한다. 선언은 “국가와 헌법의 민주화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민주주의를 사회의 형식이자 삶의 양식으로 정착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명시한다.
우리 사회에서도 이 고민은 유효하다. 예를 들어 교사의 ‘주입’은 안 되지만, 타인에 대해 차별하거나 혐오하는 학생들에 침묵하는 교육이 바람직한 것일까? 22일 학교민주시민교육 국제포럼에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한국판 마그데부르크 선언’이라 할 수 있는 ‘학교민주시민교육 선언’을 제안했다. 5·18에 대한 폄훼, 여성·이주민·난민 등에 대한 혐오 등이 심화되는 현실에서 민주주의가 일상생활과 모든 교육 과정에서 이뤄지는 원칙이어야 함을 선언하고, 교육부와 교육청이 장기 프로젝트를 세우자는 것이다. 6월항쟁을 통해 성취한 제도적 민주주의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기 위한 논의가 필요한 지금, 이 제안이 그런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김영희 논설위원
d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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