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7.01 17:37
수정 : 2019.07.01 19:26
1971년 12월25일 울산 울주군 대곡천에서 반구대 암각화가 발견됐다. 바위 절벽에 인간과 호랑이, 사슴, 거북, 물고기 등 300여점의 다양한 동물을 새긴 ‘크리스마스 선물’은 단연 고래가 화제였다. 60여점의 고래 암각화는 혹등고래, 귀신고래 등 종을 판별할 수 있을 만큼 묘사가 세세했다. 작살을 던져 고래를 잡는 모습도 담겼다. 선사시대부터 울산 앞바다에서 고래 사냥이 펼쳐졌다는 증거였다.
인류는 위험한 고래 사냥을 선망했다. 몸집이 거대한 고래는 쓰임새가 많았다. 고기는 식량이었다. 뼈는 도구나 장신구, 수염은 솔이나 코르셋 제작에 활용했다. 19세기 산업혁명으로 공업용 윤활유로 활용되는 고래기름 수요가 급증하면서 세계는 포경산업 육성에 박차를 가했다. 1864년 폭탄을 장착한 작살로 고래를 잡는 노르웨이식 포경이 시작되면서 흰수염고래 등 대형 종까지 남획했고, 기름을 짜낸 뒤 고기는 바다에 버렸다.
고래 개체 수가 급감하자 1931년 사냥 규제 논의가 시작됐고, 1946년 미국 워싱턴에서 국제포경규제협약을 체결했다. 노르웨이, 미국, 소련, 프랑스 등 19개국이 참여했다. 이들은 ‘고래 개체 수의 적절한 보존을 통한 포경산업의 지속·발전’을 목표로 국제포경위원회를 만들고 국가별 포획 쿼터, 특정 종 포경 금지 등을 협의·시행했다. 그러나 고래가 멸종 위기에 직면하고 환경단체 반발이 거세지자 1985년 상업포경 전면금지 조치를 발효했다.
일본은 국제사회의 비난에 떠밀려 88년 명목상 상업포경을 중단했다. 하지만 생태 조사 등 ‘과학포경’을 명분 삼아 해마다 200~1200마리의 고래를 사냥했다. 87년 이후 현재까지 밍크고래, 보리고래 등 1만6969마리를 잡았다고 한다. 국제사법재판소는 2014년 일본에 포경금지 판결을 내렸지만, 일본은 포경을 지속했다. 결국 2016년 국제포경위원회는 ‘일본 포경 규제 결의안’을 채택하고, 2018년 브라질에 모여 고래를 영구 보존하는 ‘플로리아노폴리스 선언’을 채택했다. 이에 반발한 일본은 6개월 유예기간을 거쳐 지난달 30일 포경위원회를 공식 탈퇴했다. 그리고 7월1일부터 배타적 경제수역에서 상업적 포경을 전면화했다.
신승근 논설위원
skshin@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