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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7.02 16:47 수정 : 2019.07.02 22:12

1954년 6월, 과테말라의 하코보 아르벤스 대통령이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조종한 군부 쿠데타로 축출됐다. 이후 수십년간 미국이 도미니카, 쿠바, 칠레, 파나마, 베네수엘라 등 중남미 좌파 정권을 상대로 벌여온 쿠데타 공작의 서막이었다. 과테말라 민중은 2007년 민주 선거로 알바로 콜롬 대통령이 당선하기까지 60여년간 군부독재 아래 신음했다.

미국이 과테말라의 민주 정부를 뒤엎은 명분은 아르벤스 대통령의 농지개혁에 맞선 미국 기업 보호였다. 과테말라에 대규모 플랜테이션 농장을 소유한 ‘유나이티드 프루트 컴퍼니’가 아르벤스 정부를 소련과 결탁한 ‘빨갱이 정권’으로 몰아붙이며 정치권에 로비를 펼쳤다. 이 회사는 제3세계 국가들에서 천혜의 자연환경과 헐값의 노동력으로 생산한 열대과일을 미국과 유럽 등 세계시장에 팔아 막대한 이윤을 남겼다. 델몬트, 돌과 함께 노동 착취로 악명이 높았다. 마침 미국에선 매카시즘의 광풍이 불었다. 2007년 기밀해제된 중앙정보국의 문건 <의회, CIA, 그리고 과테말라 1954>에는 ‘적색 감염 멸균하기’라는 부제가 달렸다.

??60여년이 흐른 지금, 미국은 중남미 국가들에서 극빈과 폭력을 피해 밀려드는 난민 행렬(카라반)에 비상이 걸렸다. 강제 가족격리, 비인간적 수용 시설, 난민 심사 거부와 추방 등 인권침해도 심각하다. 최근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선 미국 쪽으로 강을 건너려던 엘살바도르 출신의 25살 아버지와 두살배기 딸이 급류에 휩쓸린 주검으로 발견돼 세상을 충격과 자괴감에 빠뜨렸다.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쌓아 통째로 틀어막겠다는 트럼프 정부와 이에 반대하는 하원의 충돌은 급기야 연방정부의 최장기 ‘셧다운(일시적 업무정지)’ 사태를 낳기도 했다.

중미 난민은 과테말라 출신이 가장 많다. 최근 8개월새 국경지대에서 체포된 월경 시도자만 21만명이 넘는다. 대다수가 커피 농사를 하던 빈농들이다. 아이들의 고사리 손도 커피 수확에 동원된다. 이들이 난민으로 전락한 최대 이유는 커피 원두값 폭락 때문이다. 2011년 1파운드(약 453그램)당 2.7달러이던 국제 시세가 올해엔 90센트 밑으로 떨어졌다. 과테말라 커피생산자협회가 내놓은 커피 1파운드당 생산비 1.93달러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과테말라산 고급 커피는 미국의 다국적 커피전문점 스타벅스의 전세계 매장에서 원두 7그램 안팎이 들어가는 한 잔에 4~6달러에 팔린다. 그 중 농부에게 돌아가는 몫은 1.4센트(약 16원)에 불과한 셈이다. 트럼프 정부는 미국국제개발처(USAID)가 남미 커피농들을 지원해온 프로그램에도 제동을 걸었다. 미국의 자본과 다국적 기업들이 ‘바나나 공화국’이란 오명이 붙은 3세계 빈농의 피를 빨아먹은 달콤함이 난민 위기라는 부메랑으로 돌아가고 있다.

조일준 국제뉴스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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