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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7.03 16:05 수정 : 2019.07.03 19:07

‘동양평화론’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1879~1910)이 뤼순 감옥에서 순국 직전에 쓴 글이다. 안중근은 동양평화론을 체계를 잡아 완성할 계획이었으나 일본이 서둘러 사형을 집행하는 바람에 서문과 본문 일부만 남겼다. 이 미완성 유고는 애초 한문으로 쓰였는데, 안중근의 친필 원고는 사라졌고 남아 있는 것은 일본인들이 옮겨 적은 필사본뿐이다. ‘사단법인 독도(讀道)도서관친구들’이 펴낸 <동양평화론―비판정본>은 이 필사본을 고전문헌학 연구 방법에 따라 오탈자를 모두 찾아내 우리말로 옮긴 것이어서 눈길을 끈다.

<동양평화론―비판정본>에는 이 문헌의 연구·번역에 참여한 고전문헌학자 안재원의 해제가 달려 있다. 안재원은 안중근이 일본 법원에 낸 ‘청취서’를 참조해 동양평화론을 재구성한 뒤, 이토가 제창한 ‘극동평화론’과 대비한다. 이토는 극동평화론의 핵심이 담긴 연설에서 “치(治, 통치)란 난(亂, 반란)을 잊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토가 말한 평화란 로마 제국이 선포한 ‘팍스 로마나’의 평화에 지나지 않는다. 베르길리우스의 서사시 <아이네이스>에 나오는 대로 “순종하는 자에게는 관용을, 오만한 자에게는 징벌을 내리는 것”이 로마의 평화였다. 안중근은 이토의 평화론이 약소국을 쓰러뜨려 병탄하려는 술수일 뿐이라고 일갈한다.

안중근은 이토를 논박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동양평화를 이룰 구체적인 방법도 제시했다. ‘한·중·일 3국이 서로를 대등한 국가로 인정하고, 이웃 나라에 대한 침략을 시도하지 않으며, 공존공영을 추구한다. 3국이 참여하는 평화회를 조직하고, 3국 공동의 은행을 설립해 공용화폐를 발행하며, 3국이 힘을 모아 평화유지군을 창설한다.’ 안중근의 평화 구상은 유럽연합(EU)의 모태가 된 프랑스 외무장관 로베르 슈만의 ‘유럽석탄철강공동체’ 제안보다 40년 앞선 선구적인 제안이었다.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이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이념적 기초가 됐다는 사실도 기억할 일이다. 안중근 순국 이후 9년 만에 나온 3·1독립선언서는 조선독립을 출발점으로 하는 ‘동양의 평화’를 제창했다. 안중근의 원대한 구상이 담긴 동양평화론은 한반도 평화체제에 기초한 동아시아 경제안보공동체를 실현할 길을 찾는 데도 빛을 던진다.

고명섭 논설위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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