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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7.15 17:36 수정 : 2019.07.15 19:17

케이블카의 우리말 표현 ‘삭도’는 ‘가공삭도’(架空索道)의 줄임말이다. 궤도운송법상 삭도는 ‘공중에 설치한 와이어로프에 궤도차량을 매달아 운행하여 사람이나 화물을 운송하는 것’으로 돼 있다. 세종대왕에 대한 의리는 고사하고 말의 경제성 원리에도 어긋나게 케이블카만 널리 쓰이고 삭도는 거의 죽은말처럼 돼버렸다. 관련 법규나 케이블카를 소유·관리하는 업체명 따위에 희미하게 남아 명맥을 잇고 있을 뿐이다.

한국교통안전공단 자료를 보면, 전국 삭도업체는 모두 52곳이며, 이 중 24곳이 관광용 케이블카를 운영하고 있다. 국내 첫 여객용 케이블카로 1962년 설치된 서울 남산 케이블카, 부산 금정산 케이블카(1966년), 강원 설악산 케이블카(1971년), 경북 구미 금오산 케이블카(1974년) 따위가 초창기 사례들이다.

관광용 케이블카는 대부분 지역 관광명소나 도립공원 같은 자연자원과 연계 운영됨에도 대개 사기업에서 소유·운영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나 공공기관이 관리하는 경우는 경남 통영 미륵산 케이블카(통영관광개발공사), 경북 울릉 케이블카(울릉군), 사천 바다 케이블카(경남 사천시), 강원 태백 한국청소년안전체험관 케이블카(강원 태백시) 등 4곳뿐이다.

남산 케이블카 운행 중 일어난 지난 12일의 사고가 특혜성 민간 독점 문제를 다시 일깨우고 있다. 수십년에 걸친 독점 체제가 허술한 운영과 안전관리 소홀로 이어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설악산 케이블카와 더불어 군사독재 정권 시절의 유산인 남산 케이블카는 58년째 독점 이득을 누리고 있다.

남산 케이블카 사업은 대한제분 사장을 지낸 고 한석진씨가 5·16 군사정변 발생 석달 만인 1961년 8월 교통부(현 국토교통부)로부터 면허를 받고 이듬해 5월 20인승 케이블카 두 대로 시작한 뒤 지금에 이르고 있다. 군사정권 당시 면허를 내주면서 사업 종료 시한을 명시하지 않았다고 한다. 현행 궤도운송법도 케이블카를 포함한 궤도 시설을 운영할 때 필요한 사업 허가·승인 절차를 규정하고 있을 뿐 사업 유효기간은 따로 규정하지 않고 있다.

남산 케이블카를 운영 중인 한국삭도공업의 지분은 설립자인 한석진(1984년 사망)씨의 후손과, 공동대표인 이강운씨 일가가 반반씩 나눠 갖고 있다. 한씨의 아들인 한광수 대표가 지분 20%를 소유하고 있으며, 한 대표의 아들 2명이 각각 15%, 공동대표인 이강운씨가 29%, 이씨의 아들이 21%를 갖고 있다. 회사의 감사는 한광수 대표의 부인인 이정학씨다. 한광수·이정학씨 부부는 미국 국적자로 알려져 있다. 2018년 한국삭도공업의 매출은 130억5750만원, 영업이익은 52억5056만원에 이른다. 영업이익률이 40%를 웃도는 그야말로 ‘황금알’이다.

한국삭도공업은 5년 단위로 산림청과 대부 계약을 맺고 있다. 케이블카 시설 사업터(5370㎡) 중 40%가량인 2180㎡가 산림청 관리 국유지이기 때문인데, 계약 갱신에 문제가 생긴 적은 한번도 없었다고 한다. 업체에 대한 관리 감독 업무는 2016년부터 서울시에서 중구청으로 넘어갔고, 안전검사는 한국교통안전공단에서 실시하고 있다.

설악산 권금성 케이블카 역시 군사정권 시절에 벌어진 특혜성 사업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맏사위이자 유엔 주재 대사를 지낸 한병기(2017년 사망)씨가 몇몇 인사와 함께 설악관광주식회사(현 법인명 ㈜동효)를 설립하고 사업권을 받아 1971년 8월부터 케이블카 운행을 시작했다. 한씨의 부인 박재옥씨는 박 전 대통령과 그의 첫번째 부인 김호남씨 사이에서 난 맏딸이다. 동효의 지분 대부분은 한씨 자녀들이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효’는 한씨의 호이기도 하다.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자 역시 자연자원을 이용해 사업을 운영하면서도 별도의 공원 관리 비용이나 환경부담금을 내지 않는다. 국립공원에 시설물을 설치하거나 공원 일부를 사용할 때 비용을 부담시킬 수 있는 근거를 담은 ‘자연공원법’이 1980년 6월부터 시행돼 소급 적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리숙한 시절에 벌어진 특혜의 그림자가 길다.

민간 독점의 특혜성 케이블카 사업은 주기적으로 논란을 낳았다. 제18대 대선을 앞둔 2012년엔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를 둘러싸고 권력형 특혜 비리의 전형이라며 설악산 케이블카의 사업권 환수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법규 정비를 통해 부당한 특혜를 회수하고 공익을 위한 쪽으로 돌리려는 노력은 이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더불어민주당 김정우 의원이 궤도시설 허가 유효 기간을 30년으로 하고 30년을 넘은 경우엔 2년 이내 재허가를 받도록 하는 내용의 궤도운송법 개정안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했다. 현재 9개월째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부당한 독점에 따른 폐해의 찌꺼기를 치우려는 시도에 기대를 건다.

김영배 논설위원 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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