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경제보복은 지금 우리 사회의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다. 언론엔 연일 분석과 논평이 쏟아지지만 여전히 의문투성이다. 아베 신조 총리의 진짜 속내는 무엇이며, 그는 어디까지 밀어붙이려 하는가? 정부는 왜 그의 역습을 예상하지 못했을까? 2차 보복까지 이뤄진다면 경제 전반에는 어떤 파장을 낳을 것인가? 또 이번 사태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와 동북아 안보협력에 어떤 파열음을 일으킬 것이며, 미국은 이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고 어디까지 개입할 것인가? 무엇보다 우리는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하는 게 가장 바람직할까?
일본의 정·관계, 시민사회와 오랫동안 교류해온 김영호 전 산업자원부 장관은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번 일본의 경제보복은 경제전쟁이자 동시에 역사전쟁이란 점”이라고 진단한다.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3종의 수출규제 조처는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무역분쟁을 일으킨 것과 같이 한국의 성장을 억누르기 위해 일으킨 일본의 경제전쟁이 분명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일본의 ‘계획된 전략’의 전모를 파악할 수 없고 제대로 대처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배상 판결이 반발의 촉발점이었던 만큼, 침략전쟁의 반성을 명기한 “일본 헌법(평화헌법)을 고쳐 ‘전전(戰前) 일본’(군국주의 일본)으로 돌아가려는 (아베 정권의) 계획에 방해되는 한국의 과거사 문제 제기를 이참에 확실히 제어하겠다”는 역사전쟁의 성격이 뒤섞여 있음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그렇다면 해법과 대처도 이런 복합적 성격을 고려해 전개할 필요가 있다.
한국 대법원 판결과 경제보복에 대한 대통령의 경고 발언은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정당하다. 하지만 한-일 갈등을 풀 구체적 해법은 또 다른 맥락에서 마련되어야 한다. 이와 관련해 김 전 장관은 “경제(전쟁)와 역사(전쟁)를 꿰매는 우리의 새 기준과 논리를 세울 필요가 있으며,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일본 시민들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라는 보편 가치를 바탕으로 한-일 간 ‘깨어 있는 시민연대’를 형성해, 시민 부재가 아닌 시민 참여의 새로운 한-일 관계를 재정립하도록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이창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장 겸 논설위원 goni@hani.co.kr[관련 영상] 한겨레 라이브 | 뉴스룸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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