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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9.17 17:57 수정 : 2019.09.17 19:10

고대 로마 시대의 공중변소는 칸막이 없이 구멍만 뚫린 긴 의자에 사람들이 걸터앉아 담소를 나누는 개방적 형태였다. 하지만 일상생활의 필수품이면서도 대부분의 지역이나 시대에서 변기와 변소엔 늘 ‘지저분하다’는 인식이 따라붙었다. 직접적인 표현도 꺼렸다. 변소를 뜻하는 영어 ‘토일렛’(toilet)은 17세기 프랑스에서 머리를 다듬을 때 어깨에서부터 드리우는 천 ‘투알레트’(toilette)에서 기원했다. 이후엔 몸을 치장하는 방을 가리키게 됐는데, 이 표현이 변소를 에둘러 가리키는 단어가 됐다.

16세기 말 영국의 존 해링턴 경이 만들어 자신의 집과 엘리자베스 1세의 궁에 한대씩 설치한 ‘에이잭스’는 현대 수세식 변기의 기원으로 꼽힌다. 다만 배수관이 일자형이라 올라오는 악취를 막진 못했다. 이후 에스자 형태의 배수관이 고안됐지만, 신체에 대한 언급마저 금기시한 빅토리아 시대의 엄격한 도덕주의를 거치며 부정적인 인식은 한층 굳어졌다. 하수관 시설이 대대적으로 개선되고 변기가 각 가정에 보편화된 20세기 초 이후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런 ‘지저분한’ 변기로 ‘고상한’ 예술을 전복시킨 이는 마르셀 뒤샹이다. 1917년 뉴욕의 한 철물점에서 구입한 남성용 소변기를 거꾸로 세우고 가명으로 서명해 <샘>이라는 제목으로 앙데팡당전에 출품했을 당시, “비도덕적이고 저속하다”는 등의 이유로 전시가 거부됐다. 공장에서 찍어낸 기성 제품을 예술이라 한 것 자체가 파격이지만, 그 오브제가 변기였기에 충격은 더했을 것이다. 뒤샹의 변기는 ‘무엇이 예술인가’라는 질문임과 동시에 예술가의 권위와 권능에 대한 도전이었다.

변기는 정치적 메시지로도 쓰인다. 2010년 미국의 한 조각가는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의 얼굴 형상을 한 소변기를 만들어 논란이 됐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방문 당시 인천시청의 시장실 변기가 통째로 교체됐다는 폭로가 나왔던 2016년엔 인터넷에 대통령 봉황이 새겨진 변기 사진이 넘쳐났다. 며칠 전 영국 블레넘궁에서 전시 중 도난당한 이탈리아 조각가의 작품 <아메리카>는 미국의 빈부격차와 ‘아메리칸드림’을 비꼬기 위해 18K로 만든 황금변기다. 변기 위에서 모든 인간은 평등한 법. 권력과 위선, 부조리함을 폭로하는 변기의 풍자는 계속된다.

김영희 논설위원 d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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