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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9.18 16:50 수정 : 2019.09.18 19:11

서울과 평양에서 1929년부터 46년까지 아홉차례 열린 경평축구는 당대 최고의 관람 스포츠였다. <동아일보>는 1934년 4월6일 평양 경평전을 이틀 뒤 보도하면서 “…후반: 역풍에 불리하든 경성군 문을 밖우자 육박맹렬하엿으나 평양군의 반격도 볼만하야…”라는 식으로 묘사해 뜨거운 분위기를 증언하고 있다.

정영열·김흥태 교수의 ‘경평전의 사적 고찰과 의의’ 논문은 “경평전이 일제강점기 동포애와 민족주의 발현에 공식적인 장을 제공했다”고 평가한다. 해방 이후 서울에서 마지막 경기가 열렸는데, 서울과 평양을 오가야 하는 경평축구의 개념엔 분단이 들어설 자리는 없었다.

경성과 평양을 대표한 선수들은 해방 뒤 남북한 국가대표팀의 주축으로 활동하면서 물줄기를 이어갔다. 1990년 10월11일에는 마지막 경평전 뒤 54년 만에 평양에서 남북 대표팀의 친선경기가 벌어졌다. 당시 남한은 김주성이 골을 넣었지만 1-2로 졌고, 12일 뒤 서울 잠실에서 열린 북한의 답방 경기에서는 황선홍의 골로 1-0으로 이겼다.

앞서 국제무대에서는 1978년 방콕 아시안게임 결승에서 남북이 만나 공동우승을 차지했다. 국가대표 수비수로 트로피를 들어올렸던 김호곤 수원FC 단장은 “1960년대는 북한이 공포의 팀이어서 만나는 것을 껄끄러워했고, 70년대도 북한 축구가 강했다”고 회고했다. 방콕 대회 이후 최근까지 남북한의 A매치 전적은 7승8무1패로 남한이 절대 우위다.

오는 10월15일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는 2022 카타르월드컵 아시아 2차예선 남북 대결이 펼쳐진다. 2연승으로 H조 1위인 북한은 남한과의 경기에 바짝 신경을 쓰고 있다. 방송사도 평양 대회라는 상징성이 커 이 경기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29년 만의 평양 경기를 준비하는 대한축구협회는 노심초사다. 선수단 파견이나 응원단 조직 등 행정적으로 할 일이 많은데, 북한 당국의 반응은 적극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월드컵 예선은 국제 룰을 따라 치러야 하고, 중계권도 거의 합의된 것으로 알려져 제3의 장소로 개최지를 옮길 가능성은 거의 없다. 경평축구 시절 한반도를 시야에 두고 오간 열정처럼 축구에서만큼은 남북이 화통하게 뚫렸으면 좋겠다.

김창금 스포츠팀 기자 kim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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