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9.29 16:55
수정 : 2019.09.29 19:45
종교와 문화권마다 나그네를 환대하라는 가르침이 있다. 숙박과 교통, 치안이 변변치 않던 지난 시절 낯선 곳을 전전하는 행위는 위험하고 힘든 일이었다. ‘여행’이라는 뜻의 영어 ‘트래블’(travel)의 어원이 고통과 수고로움을 뜻하는 라틴어 ‘트라바일’(travail)이라는 게 말해주듯, 집 떠나면 고생이었다. 예측 불가능한 위험과 동일어이던 여행을 안전하고 예측 가능한 상품으로 만든 사람이 영국인 토머스 쿡(1808~1892)이다.
침례교 전도사였던 쿡은 1841년 7월5일 영국 레스터에서 600여명을 모아 러프버러의 금주캠페인 집회로 보내는 단체여행을 성공시켰다. 전세열차를 빌려 1실링에 교통편과 식사를 제공했다. 이를 계기로 그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교통·숙식 등을 묶은 패키지 관광을 개척했다. 당시까지 여행은 부유층과 모험가의 전유물이었다. 쿡은 세계 최초의 여행사를 세운 뒤 1851년 런던 수정궁박람회에 15만명을 유치하고, 1856년 유럽 대륙 순회관광과 1869년 성지순례 관광 등을 성공시키며 오늘날 패키지 관광의 틀을 만들었다. 당시 미술비평가 존 러스킨은 “열차 여행은 여행으로 간주할 수 없다. 우리를 소포처럼 취급해 여행지로 보내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라고 반대했지만, 대중은 호응했다. 쿡은 전문 가이드 고용, 호텔 할인권과 객실 예약, 환전, 여행자수표를 업계에 도입했으며 <토머스 쿡 열차시각표> 책자는 배낭여행자들의 필수품이었다.
토머스 쿡 여행사는 토머스 쿡 항공과 콘도르항공사를 비롯해 호텔과 콘도 200개를 보유하고 2만2천여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등 오랫동안 세계 최대 여행사였지만, 지난 22일 파산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다니는 세상이 됐지만 온라인 위주의 여행산업 변화에서 혁신하지 못한 탓이다.
미국의 역사학자 대니얼 부어스틴은 <이미지와 환상>에서 고급 여행상품일수록 모든 일정은 계획대로 진행되고 여행지에서 예정에 없는 돌발적 상황이나 현지인 만남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을 내세운다고 지적한다. 한때 예측 불가능한 위험한 행위였던 여행은 모든 게 일정표대로 차질 없이 진행되는 패키지 관광 상품이 됐고 그 덕분에 대중화됐다. 모든 여행 정보가 손안에 있는 세상에서 패키지 관광을 개척한 토머스 쿡 여행사는 막을 내렸다.
구본권 미래팀 선임기자
starry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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