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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0.14 19:06 수정 : 2019.10.15 10:11

‘장님 코끼리 만지기’ ‘꿀 먹은 벙어리’ ‘절름발이 행정’ ‘외눈박이 시각’ 등등.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신문과 방송 등 언론에서 빈번하게 쓰던 표현이다. 요즘도 간혹 등장하나 거의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4년 11월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조장할 수 있는 속담과 관용어 등을 쓰지 않도록 기자들을 교육할 것을 각 언론사에 공식 요구했다. 비록 장애인을 비하할 의도에서 쓴 것은 아니고 특정 상황을 비유하기 위해 무심코 사용한 것으로 보이나 결과적으로 장애인에게 상처를 주는 표현이라는 이유에서다. 이런 표현을 공공기관인 언론이 공개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장애인의 인권을 침해하고 존엄성을 훼손한다. 유엔이 2006년 채택한 ‘장애인 권리협약’에도 어긋난다. 한국기자협회는 그해 12월 ‘인권보도준칙’에 “통상적으로 쓰이는 말 중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 뉘앙스를 담고 있는 관용구를 사용하지 않는다” 등 장애인 인권 관련 규정을 신설했다.

장애인 비하 표현을 쓰지 않기 위한 노력은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법제처는 장애인인권단체들과 함께 2014년 각종 시행령에 들어 있는 장애인 비하 용어들을 바로잡았다. 맹인→시각장애인, 농아자→청각 및 언어장애인, 정신병자→정신질환자 등이다. 또 사회복지법인 엔젤스헤이븐은 2014년부터 ‘벙어리장갑’을 ‘손모아장갑’으로 하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유독 이런 움직임에 역행하는 곳이 있다. 바로 국회다. 장애인 차별을 철폐하고 인식 개선에 앞장서야 할 국회의원들이 장애인 비하 발언을 되풀이하고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인 여상규 자유한국당 의원이 지난 7일 검찰청 국정감사에서 “웃기고 앉았네, 병신 같은 게”라고 말해 여론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여 의원 외에도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 등 최근 1년 새 장애인 비하 발언과 관련해 국가인권위에 진정이 접수된 정치인이 7명이나 된다. 이쯤 되면 ‘고질병’이라 할 만하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등 6개 장애인인권단체가 11일 기자회견을 열어 여상규 의원의 공식 사과, 정치권의 각성과 함께 국회에 대한 국가인권위의 강력한 시정 권고를 촉구했다. 2007년 제정된 ‘장애인 차별 금지법’은 “누구든지 장애를 이유로 학교, 시설, 직장, 지역사회 등에서 장애인 또는 장애인 관련자에게 집단 따돌림을 가하거나 모욕감을 주거나 비하를 유발하는 언어적 표현이나 행동을 하여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회야말로 장애인 인권 교육을 의무화해야 할 곳이 아닌가 생각한다.

안재승 논설위원 jsahn@hani.co.kr

▶ 관련 기사 : 여상규 법사위원장, 김종민 의원에게 “X신 같은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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