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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0.15 18:36 수정 : 2019.10.15 19:34

쿠르드족은 규모 면에서 터키와 아랍, 이란과 함께 서남아시아 4대 민족으로 분류된다. 인구는 2500만~3500만명을 헤아린다. 독립된 언어와 문화, 역사를 갖고 있지만 독립국가를 설립하지 못한 채 터키와 시리아, 이라크, 이란에 걸쳐 살고 있다. 이 때문에 쿠르드인들의 처지는 사는 나라에 따라 다르다. 이라크에선 미군의 걸프전에 협조하면서 자치권을 얻었으나, 터키·시리아 등에선 독립과 자치 확보를 위한 무장투쟁으로 갈등을 겪고 있다.

쿠르드어는 여러 방언을 포함하고 있지만 모두 어원적으로 인도·유럽어족인 이란어의 한 갈래라고 한다. 종교적으로는 대부분 이슬람 수니파에 속한다. 쿠르드인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인물은 십자군과 싸웠던 아이유브 왕조의 설립자 ‘살라딘’일 것이다. 그는 1187년 예루살렘을 탈환하고 하틴 전투에선 십자군 주력을 격파해 이슬람의 수호자로 명성을 얻었다. 당시 영국의 ‘사자왕 리처드’와의 대결은 할리우드 영화에서도 여러차례 각색됐다.

쿠르드는 이후 오스만 튀르크와 페르시아-이란계 세력이 각축하는 틈바구니에서 부침하다, 19세기 후반부터 근대적 민족주의 운동의 영향을 받는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엔 독립의 기회도 얻었다. 영국 등 연합국이 오스만 제국을 약화시키기 위해 쿠르드에 독립국가를 약속한 것이다. 그러나 전후 ‘쿠르디스탄’의 건국이 포함된 1920년의 세브르 조약이 3년 뒤 로잔 조약으로 대체되면서 독립국가의 꿈은 물거품이 됐다. 쿠르드족은 이후 여러차례 무장투쟁도 벌였으나, 터키 등의 강력한 무력 진압과 강제 이주로 큰 희생과 고통만 겪었다.

터키가 최근 시리아 내 쿠르드 무장세력을 겨냥해 군사 행동에 들어갔다. 미군의 철군으로 힘의 공백이 생기자 국경을 넘어 쿠르드 세력을 직접 공격하고 나선 것이다. 그동안 미군의 이슬람국가(IS) 전쟁에 협조하며 독립 또는 자치의 꿈을 키워가던 쿠르드 입장에선, 미군의 일방적인 철군이 ‘토사구팽’일 수 있다.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언제든지 버림받을 수 있는 약소민족의 설움이 애잔하다.

박병수 논설위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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