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8.08 19:00
수정 : 2013.08.0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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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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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개성공단 하면 남북 화해와 협력의 상징이라고 말한다. 백번 맞는 말이다. 그런데 나는 개성공단에 ‘상징’ 그 이상의 것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2년 전 중소기업중앙회를 출입해볼 기회가 있었다.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를 거의 매일 드나들었는데 몇가지 놀란 것이 있다. 하나는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 정권과 밀착해 중소기업의 권익 옹호에는 소홀했다는 지적을 받았던 이 조직이 ‘대기업과의 전쟁’을 벌이는 중소기업인들의 베이스캠프 같은 곳으로 변모해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대기업들이 제조업에서부터 벤처, 심지어는 두부와 빵가게 같은 소상공인들의 생계형 업종에까지 무차별적으로 침범하면서, 중소기업인들이 벼랑 끝에 내몰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소기업들이 아우성을 치는 와중에도 예외적인 곳들이 있었다. 바로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이었다. 중소기업계에선 당시 제일 돈 잘 버는 곳은 개성공단 입주기업이라는 얘기들이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 이 입주기업들 사정이 괜찮다는 얘기를 그 전에도 들은 바 있지만, 실제로 해당 기업인들과 전문가들을 만나보니 예상을 뛰어넘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저임금과 저지가, 유리한 입지 여건에 있었다. 한국에서 고임금·고지가에다 대기업의 영역 침범으로 경쟁력을 상실한 중소기업들은 이미 중국과 베트남 등지로 많이 밀려났는데, 개성공단은 이 지역들보다도 훨씬 유리한 여건을 누리고 있었다.
이런 실태는 송장준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이 2011년 말 입주기업 123곳 중 83곳을 조사한 보고서에 잘 드러나 있다. 개성공단 노동자들의 월평균 임금은 115.5달러(약 12만9000원)로, 중국 칭다오(청도)공단 368~460달러, 베트남 딴투언공단 151~164달러에 견줘 훨씬 낮았다. 개성공단 토지가격은 ㎡당 41달러로, 칭다오(100~200달러)·딴투언(200~260달러)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저렴했다. 물류 측면에서도 개성공단은 서울에서 60㎞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통관절차를 고려하더라도 물품 반입에 1~3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반면 칭다오에서 인천은 7~8일, 딴투언에서 부산은 9~10일이나 걸린다.
그래서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은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 사건, 5·24 대북 제재 조처 등 남북한 관계가 최악의 상황에 빠져들어도 잠시 주춤할 뿐 금세 회복했다. 생산액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북측 고용인원은 2005년 7000여명 수준에서 올해 초 5만여명으로 급증했다. 기업들은 시설 확장과 추가 고용을 원했는데, 개성 인근 지역에서 인력을 더 구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입주기업의 62.5%가 인력 부족을 호소했다. 남쪽도 입주기업 123곳에 원부자재를 납품하는 업체가 5000여곳에 이르러 상당한 파급효과가 있었다.
2004년 말 첫 생산에서부터 지금까지 8년여의 실험은 개성공단의 성장 잠재력이 무궁무진하고 남북한 사회 전반에 끼칠 효과가 엄청날 것임을 보여준다. 남쪽은 중소기업에 활로를 열어주는 것은 물론이고 고용 창출 효과를 볼 것이고, 북쪽은 고용 창출과 함께 자본주의를 실험하는 소중한 기회를 얻을 수 있다. 특히, 여러 차례의 경제개혁에 실패한 북쪽 지도층에게도 이른바 중국식 개혁·개방의 길을 추구할 수 있는 자신감을 갖게 할 것이다.
개성공단의 존립 이유를 이렇게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은 남북의 위정자들이 자존심 싸움에 매달리느라 이 공단의 진정한 가치를 잊고 있지 않나 우려가 되기 때문이다. 개성공단 폐쇄라는 극약처방은 남북한이 ‘윈-윈’ 할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치는 최악의 선택이 될 것이다. 14일 당국자 간 회담에서 통 큰 합의가 이뤄지길 기대한다.
박현 워싱턴 특파원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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