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입니까? 요즘 중-한 관계 정말 좋죠?” 태산을 오르는 케이블카에서 만난 한 중국인은 우리 일행이 한국 사람이란 걸 확인하자 대뜸 인사말을 건넨다. 베이징의 택시기사나 중국의 학자들도 자주 이런 말을 한다. 중국에 머무는 기자로서야 기분 좋은 일이다. 기차표를 사려 일본 여권을 내다 역무원에게 ‘정말 댜오위다오(센카쿠열도)가 일본 거냐’라는 날선 질문을 받기도 했다는 일본 기자들에 견줄 바가 아니다. 하지만 최근 미·중·일 사이에서 한국의 중심 잡기는 녹록잖아 보인다.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그야말로 내 맘 같지 않아 뵌다. 미국의 움직임은 한국을 무척 불편하게 만든다. 동북아 역사에 무지한 듯 혹은 무관심한 듯해 보이는 위정자들의 발언은 상식적인 우리네 정서와 한참 동떨어져 있다. 얼마 전 한국을 찾은 애슈턴 카터 미국 국방장관은 “한-일 관계의 역사적 민감성을 이해한다”면서도 방점은 “미래지향적인 한·미·일 연대를 추구해야 한다”는 데 찍었다. 2월 말엔 웬디 셔먼 미국 국무부 정무차관이 “과거사는 한·중·일 모두의 책임”이라고 양비론적인 견해를 피력했다. 한국 쪽에서 나오는 일본의 역사 왜곡 비판은 “정치지도자가 값싼 박수를 얻으려는 것”으로 치부했다. 대니얼 러셀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위안부 강제동원은 인신매매 사건”이라고 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발언을 긍정했다. 나아가 미국은 이달 말 방미하는 아베 총리의 상·하원 합동연설을 수락했다. 미국은 지난해에도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적극 지지했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미래로 나아가자’는 미국의 인식은 한국의 ‘친미’ 보수파에게조차 부담이다. 과거사 문제는 한국의 자존심과 맞닿아 있다. 더구나 지금은 교과서 검정을 통한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 한창이다. 과거사는 덮어두고 한-미-일 동맹부터 강화하자는 미국의 무리수와 초조함 뒤엔 중국의 굴기가 자리하고 있다. 미국은 시진핑 중국 정부가 신형 대국관계 담론을 꺼냈을 때만 해도 콧방귀를 뀌었다. 서로 존재를 인정하고 이익은 건들지 말자는 담론이다. 그러다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국면에서 완벽하게 허를 찔렸다. 동맹국을 압박했음에도 영국을 필두로 한국, 오스트레일리아 등 맹방들은 이 은행에 도미노처럼 가입했다. 중국 매체들은 “세계의 주도권이 미국에서 중국으로 바뀌는 중대한 전환점”이라고 한껏 의기양양했다. 미국 내부에서조차 “참담한 실패”라는 자책이 나올 정도였다. 아시아 회귀, 재균형 전략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구상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의 흥행 성공 탓에 구멍이 나버린 셈이다. 중국은 나아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THAAD) 한반도 배치 논란에 관해 “배치가 이뤄지면 그간 쌓인 한-중 간 호감을 크게 손상시키고 양국 관계 기초를 흔들 것”(환구시보)이라고 압박한다. 사드 배치가 중국이 아닌 북한을 겨냥한 것이란 한·미 양국의 주장은 “코흘리개 애들을 꾀는 말”이라고 일축한다.
성연철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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