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중국 외교가의 화두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의 러시아 방문 여부였다. 거듭된 러시아 쪽의 ‘설레발’ 속에 과연 그가 2차 세계대전 승전 7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할지 여부를 두고 중국의 한반도 전문가들과 외교관들은 예측을 거듭했다. 결국 김 제1비서는 러시아행 비행기를 타지 않았다. 핵보유국 승인 문제를 두고 러시아가 동의하지 않았다거나 기대했던 만큼의 원조를 얻어내지 못했다거나, 혹은 북한이 기대한 의전을 얻어내지 못했다거나 다자 정상외교 무대 데뷔가 부담스러웠다거나…. 추측들은 끝이 없다. 방러 무산 뒤 중국 안에서는 “김 제1비서가 9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항일전쟁 승리 70돌 행사에도 참석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는 전망이 많아졌다. 방러의 걸림돌로 작용했던 조건들이 넉달 뒤 중국이라고 달라질 게 없다는 것이다. 최근 만난 중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이대로라면 북한이 장기간 고립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 중국 학자는 “주변 환경이 너무 좋지 않다. 이대로는 남북 관계 전망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의 말마따나 북한을 둘러싼 정세는 냉담하기 이를 데 없다. 현영철 북 인민무력부장 처형 첩보 공개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갑작스러운 방북 무산, 그리고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시험 발사 등 종잡을 수 없는 북한의 행동이 일차적인 원인이다. 자업자득이란 책임론을 피하기 어렵다. 김 제1비서의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진지한 대화의 대상이라기보다 점점 희화화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있는 느낌이다. 한국 보수 종편에서 전하는 보도는 그를 부조리극의 주인공처럼 부각한다. 얼마 전 한국을 다녀온 중국의 한반도 전문가는 “한국에서 종편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내가 연구하는 북한의 현실과 너무나 다른 보도를 온종일 전하고 있더라. 이대로 대북 인식이나 여론이 왜곡돼 굳어진다면 답이 없다”고 했다. 여기에 ‘붕괴’를 전제로 한 보수 정권의 행보와 맞물려 북한에 대한 진지한 접근은 더욱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대북 교류를 틀어막은 5·24 조치는 5년째 변함이 없다. 북한은 이제 ‘웃기는 나라’에서 ‘웃기지도 않는 나라’로 여겨지고 있다. 주변국 역시 북한은 뒷전인 듯하다. 시진핑 정권 들어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대국을 지향하는 중국은 북한과 고위급 교류가 2년 이상 없는 상태다. 일대일로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남중국해 주도권 확보 등 중국의 굵직한 외교 전략에도 북한의 존재는 없다. 중국인들의 대북 인식 역시 과거 김정일 정권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이 악화됐다. 미국은 굳이 거론하지 않아도 북한과 당분간 대화할 뜻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대로 ‘웃기지도 않는 나라’가 되어가는 북한을 도외시하면 되는 것일까. 방외인인 외국인들이 보내는 두 가지 메시지는 당사자인 우리들에게 울림을 준다. 주한 미국 대사를 지낸 도널드 그레그는 저서 <역사의 파편> 출판 기념회에서 “북한을 악마화하고 미워해서 우리가 얻을 것이 뭐가 있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북한, 베트남, 이라크의 예를 들어 “이 나라들은 모두 미국의 악마화 작업 끝에 전쟁을 겪었다”며 “계속 대화하지 않으면 고립된 북한은 더욱 핵무기 개발에 집착할 것”이라고 했다.
성연철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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