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또야!’ 지난 3월께부터였던가. 나가사키 군함도(하시마) 등 일본의 ‘메이지 일본산업혁명 유산’ 23곳을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것에 대한 반대 여론이 본격화하기 시작했을 때, 난 적지 않은 피로감을 느꼈다. 안 그래도 한-일 관계가 경색돼 있는 마당에 이 문제가 다시 한번 양국 관계에 부담을 주는 외교 현안으로 대두되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군함도라는 지독히 협소한 사실상의 암초를 해저 탄광으로 개발하는 과정에서 인간들이 감내해야 했을 피땀 어린 노력과 희생에 대해 인류 전체가 조금 관심을 가져볼 필요도 있겠다 싶었다. 지난달 15일 찾은 섬의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겨우 6만3000㎡ 정도 면적의 섬에 들어선 건물은 모두 40여동(건물 번호로는 71동까지)이나 된다. 그 모습이 제법 기이하고 웅장해 조금 떨어져 관찰하면, 말 그대로 바다에 떠 있는 거대 군함과 같다. 그 안엔 1916년 지어진 일본 최초의 철근 콘크리트 건물(30호)도 있고, 예전에 사용되던 영화관·신사·수영장도 있다. 조선인 노동자들의 강제 노동의 역사를 떠올려볼 때 꺼림칙한 느낌이 없는 건 아니지만, 유대인 집단학살로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 수용소도 1979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사실이 있다. 문제는 이를 보는 우리들의 시선이다. 이건 뭔가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은 지난달 8일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의 기자회견 발언을 듣고 나서였다. 그는 유산 등재와 관련해 한국 등이 반대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일본은 1850년대부터 1910년까지 시기의 산업유산으로서의 보편적인 가치에 착목해 이 유산의 등재를 추천한 것”이라고 답했다. 일본이 기념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메이지 일본이 근대화를 이뤄가던 1850년대부터 1910년까지이기 때문에, 조선인 강제동원이 이뤄진 시기(1938~1945년)와는 겹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이다. ‘피식’ 하고 헛웃음이 나왔다. 일본의 독립 언론인인 하야시 에이다이의 저작 <지쿠호, 군함도>와 오랫동안 나가사키 조선인 피폭자 문제를 조사해온 일본의 시민단체 ‘나가사키 재일조선인의 인권을 지키는 모임’(이하 모임)이 펴낸 <군함도에 귀를 기울이면> 등의 책을 펼쳐 봤다. 탄광의 노동 조건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열악했다. 모임의 한 회원이 섬을 방문했다가 발견한 당시 정사무소(한국의 동사무소)의 화장인허증엔 1925년에서 1945년까지 숨진 이들의 이름·본적·사망일시·사망원인 등이 기재돼 있다. 놀란 것은 같은 기간 숨진 일본인 노동자가 조선인(122명)보다 10배나 많은 1162명이라는 사실이었다. 조선인은 물론 일본의 하층 노동자들에게도 섬은 말 그대로 ‘지옥’이었던 셈이다. 전쟁 이후 섬은 어찌됐을까. 2013년 나온 <그 무렵의 군함도>라는 사진집엔 1950~60년대 섬에서 일상을 보내는 광부들과 그 가족들의 모습을 그린 사진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아이스크림을 문 채 천진하게 미소 짓는 아이와 고된 표정으로 담배를 피워 문 노동자의 사진을 보고 나도 모르게 짠해져 눈물이 났다. 섬의 노동은 가혹했지만, 아이들은 자라고, 인간의 삶은 계속돼야 했을 것이다.
길윤형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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